건설·철강·해운·정유업계 등 피해 확산
정부, 화물연대에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
경제단체도 "파업 즉각 중단" 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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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울의 한 건설 현장이 화물연대 총파업 여파로 공사가 잠정 중단됐다. 사진=김기령 기자 |
[에너지경제신문 김기령·이승주 기자] "토목 공사가 마무리 단계인데 레미콘 없이는 움직일 수 없다 보니 공사가 잠정 중단 상태죠. 공사가 언제 재개될지도 미지수라 공기를 못 맞출 확률이 높아졌습니다."(서울 영등포구의 한 상업시설 건설 현장 관계자)
화물연대 총파업이 엿새째 이어지면서 건설·산업계에 ‘셧다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국 각지 소규모 건설 현장을 시작으로 공사 중단 사태가 속출하고 있으며 철강·해운 업계에도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국가 경제 전반으로 피해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2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 24일부터 시작된 화물연대의 운송 거부로 시멘트 출고량이 90% 이상 급감하고 건설 현장의 약 50%에서 공사가 중단됐다.
특히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단지로 꼽히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건설 현장도 파업 여파로 지난 25일부터 골조 공사를 중단했다. 공사비 논란 등으로 중단됐던 공사를 재개한 지 약 한 달 만에 또 공사 중단 위기를 맞은 것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레미콘 공급이 중단된 데다 운송 자체가 멈추는 바람에 다음 공정으로 순차적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단계가 밀리는 형국"이라며 "과거 파업 사태 때보다 합의 도출이 쉽지 않아 보여 상황이 심각해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고 우려했다.
철강·해운 업계 등도 건설업계와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파업 첫날 약 8만5000톤(t)의 철강 제품을 출하하지 못했으며 지난 27일에는 2만2000톤만 출하된 것으로 집계됐다. 일평균 출하량(4만6000톤)의 47.8% 수준에 그친 것이다. 해운 업계 역시 지난 28일 기준 부산항 반출입량은 8841TEU(1TEU=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분)로 전월 대비 43.3% 수준에 그쳤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23일부터 이날 오전까지 접수된 화물연대 운송거부 관련 애로사항은 총 62건(37개사)으로 집계됐다. 접수 건수 중에는 납품 지연으로 인한 위약금 발생 및 해외 바이어 거래선 단절 등에 대한 피해 우려가 29건(전체의 47%)으로 가장 많았다.
정유 업계로도 불똥이 튀었다. 수송 차량이 멈추면서 공급이 끊긴 일부 주유소에서는 휘발유 등이 동이 났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휘발유·경유 대란 우려도 제기된다"고 전망했다.
총파업 여파가 국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우려가 높아짐에 따라 정부는 이날 오전 화물연대 총파업과 관련해 시멘트업계 운송 거부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2004년 업무개시명령 제도가 도입된 후 사상 처음으로 명령을 적용했다. 지난 28일 화물연대와의 첫 협상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결렬됨에 따라 대응 수위를 높인 것으로 풀이된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피해 규모와 파급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시멘트업계의)물류 정상화가 가장 시급하다고 판단됐다"며 "화물운송 종사자들이 업무에 복귀하도록 함으로써 국가 물류망을 복원하고 국가 경제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업무개시명령 이유를 설명했다.
명령을 송달받은 운송사업자 및 운수종사자는 송달받은 다음날 24시까지 집단운송거부를 철회하고 운송 업무에 복귀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복귀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운행정지·자격정지 등 행정처분 및 3년 이하 징역, 3000만원 이하 벌금 등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국내 주요 경제단체들도 화물연대의 운송거부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화물연대의 핵심 요구사항인 안전운임제는 실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제도"라며 "국가 경제의 혈관인 물류를 볼모로 한 집단 운송거부는 경제 위기를 심화시키고 국민 생활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기 때문에 화물연대는 조속히 집단 운송거부를 중단하고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에 나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입장문을 통해 "화물연대는 명분과 정당성이 없는 집단운송거부를 즉각 중단하고 업무에 복귀해 물류 정상화와 경제위기 극복에 동참할 것을 거듭 촉구한다"고 질타했다. 경총은 이어 "정부 역시 시멘트 분야 이외에도 우리 산업과 수출의 기반이자 국민 생활과 직결된 철강, 자동차, 정유, 화학 분야 등도 한계에 다다른 만큼 피해가 더욱 커지기 전에 업무개시명령 확대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화물연대 측은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직후 성명서를 발표하고 "업무개시명령은 화물노동자의 기본권을 제한하겠다는 계엄령을 선포한 것"이라며 "정부는 업무개시명령 엄포를 즉각 중단하라"고 반발했다.
giryeong@ekn.kr·lsj@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