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재·독과점' 은행에 직격 날린 尹정부..."새 사업자 출현 능사 아냐" [전문가 진단]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2.21 06:30

고금리 서민들 이자고통, 銀 최대 실적으로 '성과급'

국민 공분...尹대통령 "은행 독과점 폐해 크다"



"은행권 독과점 요소 있어, 정부가 관리할 필요"

"금산분리, 외국계 은행 철수...아이디어 실현 어려울 것"



당국 규제체계, 네거티브로 전환..."투자은행 허용해야"

새 사업자 출현만으로 기존 체제 바꾸는 것 역부족

은행권

▲은행권이 금리 인상기 이자수익을 통해 역대 최대 실적을 내고 이를 바탕으로 거액의 성과급이나 희망퇴직금을 지급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KB국민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신한은행(사진 왼쪽 위부터)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최근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영업 행태에 대해 "약탈적"이라고 일갈하며 은행권의 과점 체제를 깨고 완전 경쟁을 유도하는 방안을 모색 중인 가운데 전문가들은 대체로 당국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금리 인상기에 은행권의 수익이 증가한 부분은 당국이 나서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이다.

다만 은행권의 경쟁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전문은행과 같은 은행의 수를 늘리기보다는 네거티브 규제(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모두 허용되는 규제) 체계를 도입해 미국과 같은 투자은행(IB) 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 금리 상승→은행 최대실적→ 성과급 잔치..."정부가 일부 관리해야"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 특히 5대 은행(신한·KB·하나·우리·NH농협은행) 경쟁 촉진이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금융권을 향한 발언들이 신호탄이 됐다.

윤 대통령은 이달 13일 "은행은 공공재적인 성격이 있다. 은행 고금리로 인해 국민들 고통이 크다"고 했다. 이어 15일에는 "은행 산업에 과점 폐해가 크다"며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에 실질적인 경쟁시스템 강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금융위와 금감원은 이달 23일 은행권 경영, 영업관행, 제도 개선 TF(태스크포스) 1차 회의를 열고 은행권 경쟁촉진, 성과급과 같은 보수체계 등 6개 과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당국은 오는 6월 말까지 개선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당국이 은행의 완전 경쟁을 유도하겠다고 나선 것은 금리 상승기 은행권이 이자수익을 통해 역대 최대 실적을 내고 이를 바탕으로 거액의 성과급이나 희망퇴직금을 지급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금리 상승기 가계, 기업은 고금리로 허덕이는 반면 은행은 손쉬운 이자장사만 한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과점 폐해를 막고 은행의 완전 경쟁을 유도해 금융소비자들의 편의를 강화하겠다는 게 당국의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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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은행업의 과점 폐해가 큰 만큼 실질적인 경쟁시스템 강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실제 우리나라 일반은행 수를 보면 1997년 외환위기 직전 26개에서 외환은행 이후 부실은행 구조조정, 은행 간 M&A 등을 거치며 2017년 8월 말 12개로 줄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5대 시중은행의 과점 체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당국의 정책 방향성은 일견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은행은 일반 기업과 달리 대중으로부터 예금을 수취하는 권한에 대한 라이선스를 부여받은 것이기 때문에 독과점적인 요소가 있다"며 "특히 최근과 같이 예금금리에 비해 대출금리가 급등하면서 대형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수익이 크게 발생한 것은 정부가 일정 부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예적금, 외환, 기업금융, 소매금융 등 은행 기능별로 라이선스를 부여하는 스몰 라이선스를 통해 각 분야의 경쟁자들이 많아지면 지금처럼 은행이 무소불위로 모든 것을 독점하는 형태는 제한될 것"이라며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토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도 은행권의 메기효과가 있었던 만큼 당국이 현재 추진 중인 정책들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 "규제체계 네거티브 전환...골드만삭스 등 투자은행 도입해야"


다만 은행권의 과점 체계를 깨기 위해 거론되는 다양한 방안들이 실제로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지적도 있다. 정재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현재 시중은행은 경쟁보다는 과점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며 "그러나 금산분리 이슈, 외국계 은행들이 국내 시장에서 철수하고 있는 최근의 모습들을 고려하면 당국의 아이디어가 실제 실현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금융당국이 투자은행(IB)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우리나라 은행 수익 구조가 이자이익에 집중됐다는 지적도 있었다. 은행권의 과점 체계를 깨기 위해서는 당국의 규제체계부터 대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분석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국은 상업은행, 투자은행 간에 제한이 없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해치는 것만 아니라면 규제를 완화한다"며 "금융당국 역시 규제체계를 현재의 포지티브(법률, 정책상으로 허용한 것 외에는 모두 금지하는 것)에서 네거티브로 전환해 플랫폼 등 다양한 기업들이 진입할 수 있도록 개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은행권이 가계대출에서 이윤을 내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해 제한을 가한다거나 보증대출 위주의 중소기업 대출에서 일정 부분 리스크를 떠안도록 한다거나 등의 제도들이 필요할 것"이라며 "(새로운 사업자가 출현할 경우) 현재 은행의 이익이 조금 줄어들 수는 있지만 기본적인 체제는 바뀌지 않는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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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에서는 최근 당국의 급박한 정책들이 중장기적으로 정책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당국의 이러한 정책 논의가 네이버와 같은 빅테크에만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챌린저 뱅크를 도입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질문일 수 있지만, 은행 과점 체제의 문제를 시정하기 위한 방안으로 챌린지 뱅크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논리상 맞지 않다"며 "이미 인터넷전문은행을 통한 메기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 입증됐고, 스몰 라이선스를 통한 은행업 진출은 자칫하다 은행업에 진출하면서도 규제는 받지 않는, (네이버 은행과 같은 빅테크) 은행을 만들기 위한 것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당국의 단기적인 금융 정책들이 정책의 신뢰성을 저하시킨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인터넷전문은행이 당초 중금리 대출을 확대하기 위한 취지로 시작됐지만, 결과적으로 고신용자들의 보조 계좌로 전락한 측면이 있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독과점 체계는 IMF를 전후로 부실은행을 구조조정 한다는 정부의 정책과 금융사 간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며 "금융사 M&A, 라이선스 발급 등은 모두 당국의 인가가 있어야지만 가능한 영역으로, 이걸 은행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미 은행, 빅테크 등 업종 간에 경계가 허물어지고 이에 대한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최근 거론되는 정책들은 달리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ys106@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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