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친윤’ 혹은 ‘친명’ 초선의원들 ‘활발’…비주류 ‘잠잠’
전문가들 "총선 공천·정치생명 보장 등 주류계 반대 힘들어"
▲이재명(왼쪽)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5일 오전 국회 민주당 대표회의실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에너지경제신문 오세영·윤수현 기자] 여야 초선의원들이 개혁보다 안정을 택하는 모습이다. 일반적인 초선의원의 이미지인 개혁을 위한 쓴소리보다는 각 당내 주류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단소리를 내뱉으면서 돌격대 혹은 홍위병 역할에 앞장서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은 전당대회부터 ‘당정일체’ 등을 외치고 있다. 최근 신임 당대표로 선출된 김기현 대표의 지도부 활동에도 일심동체가 돼 적극 힘을 실어주고 있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들은 이재명 당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따른 당 위기론이 불거지는 속에서도 비판의 목소리보다 ‘단일대오’를 외친다.
이전 정치계에서는 초선의원들이 소신있는 발언으로 개혁을 외치면서 새로운 당내 주류 혹은 ‘스타 정치인’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정치계에서는 초선의원들이 주류와 반대되는 주장을 외치는 것 자체가 ‘역린’을 건드리거나 ‘정치 생명의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19일 "초선의원들이 당내 주류 입장을 대변하는데 앞장서는 이유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에서 살아남으려는 의도가 크다"며 "‘팬덤 정치’가 심화되고 양당 대립이 극한인 상황에서는 개혁보다 주류 입장을 대변하는 게 정치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 21대 국회 정당 선수별 의원 수(2023.3.19)
정당 | 초선 | 재선 | 3선 | 4선 | 5선 | 6선 | 계 |
더불어민주당 | 81 | 48 | 23 | 11 | 5 | 1 | 169 |
국민의힘 | 63 | 21 | 17 | 8 | 6 | 115 | |
정의당 | 5 | 1 | 6 | ||||
기본소득당 | 1 | 1 | |||||
시대전환 | 1 | 1 | |||||
무소속 | 5 | 1 | 1 | 7 | |||
계 | 156 | 69 | 41 | 20 | 12 | 1 | 299 |
◇ 여야, ‘친윤’ 혹은 ‘친명’ 초선의원들 ‘활발’…비주류 ‘잠잠’
정계에 막 입문한 초선의원은 여야를 막론하고 ‘개혁·혁신·소신’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한 때 기득권 세력으로 올라선 인물들도 초선의원 시절에는 당 개혁에 많은 역할을 했다. 대표적으로 과거 보수진영에서는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이, 진보진영에서는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 등이 있다.
‘남·원·정’은 지난 2000년대 초 한나라당 시절 이회창 총재를 유일하게 견제했던 ‘미래연대’를 이끌면서 보수 개혁과 쇄신 정치인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천·신·정’은 김대중 정부 시절 ‘동교동계 가신’들의 전횡을 비판하며 권노갑 최고위원 2선의 후퇴를 요구하는 등 새천년민주당 운영에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 이후 당 개혁을 선도하는 아이콘으로 주목받았다.
현재 21대 국회 초선의원은 재적 299석 중 156석으로 과반이 넘는 52.1%를 차지하고 있다. 거대 의석을 차지하는 민주당의 경우 169석 중 81석(47.9%), 여당인 국민의힘의 경우 115석 중 63석(54.7%)로 각 당에서도 원내 절반이 초선의원들이다.
초선의원들은 원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개혁이나 혁신보다 주류 입장을 대변하는 데 목소리를 높인다.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의 움직임은 3·8 전당대회 과정에서 뚜렷해졌다.
강대식·강민국·박수영·배현진 등 국민의힘 초선의원 50여명은 지난 1월 김기현 신임 당 대표의 후보 시절 강력한 라이벌로 꼽혔던 나경원 전 의원에게 "윤석열 대통령의 뜻을 왜곡하고 당 내부갈등을 조장했다"며 전당대회 불출마를 주장하는 연판장을 돌렸다.
본격 전대 선거에 돌입했을 때에는 안철수 의원을 향해 공격했다.
재선의 이철규 의원과 초선 박수영 의원은 전당대회 후보 등록 첫날인 지난달 2일 안철수 의원이 인수위원장 시절 출근하지 않은 일을 거론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초선의원 30여명은 오는 27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다. 윤 대통령의 방일 직후 일본을 연쇄 방문해 한일 의원외교를 진행하고 한일외교 활동 성과를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방일은 당 전략기획부총장에 임명된 박성민 의원과 조직부총장에 임명된 배현진 의원 등 친윤계 초선의원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에서도 강경파 초선의원 모임 ‘처럼회’의 목소리가 거셌다. 다른 초선의원들은 당 개혁 등에 소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이다.
강성파 초선의원 모임인 ‘처럼회’는 당 혁신을 주도하기 위해 창설됐던 취지와 달리 강경 친명계 모임으로 탈바꿈했다는 인상이 강하다.
‘처럼회’에는 김남국·김승원·김용민·김의겸·문정복·민병덕·박영순·유정주·윤영덕·이수진·이탄희·장경태·최강욱·최혜영·한준호·황운하 의원 등 20여 명의 친명계 초선들이 포진해 있다.
오히려 초선의원들은 당 안팎으로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사법리스크와 방탄논란에도 불구하고 체포동의안에 반대하는 ‘단일대오’를 결의했다.
이 대표의 체포 동의안 표결 이후 ‘처럼회’ 소속인 김남국 의원은 "앞에서는 부결한다고 해놓고 뒤에서는 갑자기 비밀스런 행동으로 (가결) 표를 모았다는 것 자체가 너무 올바르지 않은 정치"라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강훈식·고민정 의원들이 이 대표 체포동의안 의결 이후 ‘인적쇄신’에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다른 초선 의원들이 개혁을 외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 전문가들 "초선, 총선 공천·정치생명 보장 등 주류계 반기 들기 힘들어"
여야 초선의원들이 당내 주류계 입장을 대변하는 데 앞장서는 이유는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정치 생명을 보장받아야 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예전과 달리 결기 있는 초선의원들이 없다고 봐야 한다"며 "자신들의 입장을 다르게 대변해 줄 사람이 없으니 눈치를 보면서 주류에 가까워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 소장은 "괜히 튀게 행동해서 공천권을 거머쥔 당내 혹은 원내 지도부들, 주류 인물들의 심기에 거슬린다면 정치 생명이 끝나기 때문에 재선을 바라보는 경우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내년 총선 영향이 가장 크다"며 "초선의원들의 경우 자신들이 문제를 일으켜서 당이 분열된 상황처럼 보이면 오히려 당 지지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초선의원들의 정치 생명이 어느 정도 보장되려면 주류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당내 주류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이라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낙인찍히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당 지도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전의 정치권에서는 혁신, 소신, 개혁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에도 새로운 주류로 떠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양당이 극한의 대립 구도를 보이고 있고 이 영향으로 ‘팬덤 정치’까지 심화된 상황이기 때문에 이에 초선의원들도 당내 주류와 반대되는 의견을 내세우기 쉽지 않다.
박상병 교수는 "올해 여야는 정치적인 내전 상태라고 볼 수 있다"며 "여야 두 정당이 적대적 극한 투쟁을 벌이는 상황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의원이던 시절보다 여야 대치가 강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초선의원들이 새로운 목소리를 내는 게 존재감을 나타내는 방법이었지만 지금은 주류를 대변하는 방법 밖에 없다"며 "전반적으로 ‘정치적 기형화’가 심하기 때문에 내부 개혁을 외치는 목소리가 작아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성철 소장는 "문재인 정부 이후 ‘팬덤정치’의 폐해가 드러나고 있다"며 "특정 정치인의 열성 지지자들이 ‘살생부 리스트’까지 만들고 정권을 공격하는 상황이다"라고 판단했다.
장 소장은 "당내 주류가 아니어도 지지자들 공격이 무서워 조용히 활동할 수 밖에 없다"며 "정치인이라면 국민 편에 서야 하는데 국민보다 권력자들의 눈치만 보고 그들을 대변하는 하수인 역할만 하고 있다. 국민보다 권력자 편에 서는 정치인들이 국민의 대표가 될 자격이 있을까 싶다"라고 지적했다.
차재원 교수는 "팬덤의 효과가 워낙 강하다 보니 초선의원들이 지나치게 너무 자신들의 정치적인 안위만 생각하는 경향이 전반적으로 강해졌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국회의원들은 헌법기관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자신의 양심과 소신에 따라 활동해야 한다"며 "지나치게 자신의 양심과 소신에 배치된다면 헌법기관으로서 역할을 못하는 셈이다"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