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분석] ‘무용론’ 제기되는 ‘11차 전기본’…이유는?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11.29 15:05

"정부주도, 특정 발전원 비중만 치중하는 전력수급계획으로 한전 위기 초래" 지적



"정부는 큰 틀만 제시하고 민간에 맡겨야" vs "민간주도, 불확실성 높인다" 우려도

wefwef.png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완성을 앞두고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 주도의 전기본을 폐지하고 민간 주도의 발전시장이 구축돼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 중이다.

전력산업연구회는 최근 ‘합리적 전원구성을 위한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방향’ 세미나를 열고 "정부주도로 특정 발전원 비중에만 치중하는 지금의 전력수급기본계획으로 한전의 위기가 초래됐다"며 "정부는 큰 틀만 제시하고 발전시장을 민간에 맡겨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현재 한국전력공사는 지난해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5배로 늘린 채권발행한도까지 다 채워 내년 1월부터는 추가 발행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총선을 앞둔 만큼 추가적인 전기요금 인상 없이 은행대출과 전환사채(CP) 등으로 버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전의 전력구입비를 낮추기 위해 발전사들로부터 구매하는 도매전기요금을 낮추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clip20231129102309

발전업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태가 "정부 주도의 전기본 때문"이라며 "정부가 전력시장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8차(2017년)계획 이후 2030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2050탄소중립 목표 등 실현 불가능한 목표에 억지로 맞추느라 한전의 대규모 적자와 전기요금 인상 문제를 초래했다"며 "이제는 정부 주도의 일방적 계획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전의 위기는 정부가 발표한 전기본에 맞추느라 재생에너지 비중을 급격히 늘리고, 대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비중을 줄여 가스공사의 장기계약 물량이 줄어든 데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막상 전력수요가 증가하고 LNG 발전을 확대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현물시장에서 LNG를 비싸게 도입해 한전이 비싼 전력도매가(주로 LNG가격에서 결정)를 지불한 것이 한전 적자의 원인이라는 게 손 교수의 주장이다.

실제 현재 20%가 넘는 LNG발전량 비중은 10차 전기본에서는 2036년 9%로 급감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따라 업계에선 급격한 LNG 발전비중 축소로 가스공사의 장기 LNG 수급계약에 악영향을 초래해 난방비 폭탄 현상이 재차 반복될 것이란 우려가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손 교수는 "정부의 역할은 수요전망(Outlook) 등 제시, 시장 및 제도 개혁, 송전망 확장 등 공적인 영역에 제한돼야 한다"며 "발전사업은 정부의 전망에 따라 사업자들이 알아서 설비를 건설하고 입찰 시장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발전사업 허가도 정부가 아닌 독립적 전기위원회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강제로 적자를 강요하는 게 아니라 사업자의 능력별로 시장에서 생존하고 도태되는 구조가 장기적으로 전력시장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도 "현재 수립 중인 11차 전기본도 송전망 부족, 낮은 전기요금 등, 발전 총괄원가 보상 등 현실적인 여건을 반영하지 않고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방향으로만 검토되고 있다"며 "특히 급격한 전력수요 변동에 대응하기 어려운 원전과 재생에너지 비중을 크게 늘리고 있어 그동안 전기본의 오류가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주도 계획 없으면 불확실성 커…법·제도 안 바꾸면 그대로, 업계가 직접 국회 입성해야"


다만 일각에선 정부 주도의 계획과 대규모 자본을 저렴하게 조달하지 못하면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며 민간주도 발전사업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정 교수는 "발전사업을 완전히 민간 주도로 추진하면 오히려 발전시장의 불확실성이 더 커질 수 있다"며 "정부와 공기업은 일부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필수설비나 인력 등을 유지하지만 민간에서는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 전기요금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실례로 지난해부터 LNG 가격의 급등에 따라 민간 발전사들의 수익성은 큰 폭으로 확대됐지만, 공공발전 부문은 적자를 면치 못했다. 한전그룹산 내부에선 이에 대한 불만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에서 아무리 시장의 부작용을 지적하고 구조개편, 민영화 등을 주장해도 정부와 정치권에서 권한을 내려놓거나 관련법을 바꿀 리 없다는 현실적인 지적도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창의융합대학 학장은 "정부가 대규모 발전사업 계획 수립·인허가 권한을 민간에 내어줄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며 "정치권과 대통령실도 국정과제로 시장원리가 작동하는 전력시장을 조성하겠다고 했지만 현재 상황으로 보면 무관심해 보인다. 결국 업계가 직접 국회에 입성해 정치권을 설득하고 법안을 개정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jjs@ekn.kr
전지성 기자 기사 더 보기

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