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전기차 판매량이 연간 기준으로 6년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전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기아차가 전기차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전기차 충전시설이 풍부하고 전기료 또한 저렴하지만 정작 전기차 시장은 지지부진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한국은 전기차 혁명의 선두주자로 올라올 만한 모든 재료를 가지고 있지만 지난해 전기차 판매량은 2017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였다"고 보도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기차 판매량(수입차 포함)은 15만7823대로 집계, 2022년 15만7906대보다 0.1% 감소했다.
블룸버그는 이와 관련해 비싼 가격과 고금리 환경이 수요를 둔화시키는 데 일조했지만 안전성 우려와 부족한 급속 충전기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 전환을 가로막는 최대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지난해 11월 전기차 운전자 22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기차 운전자들은 운행 시 걱정 요소로 '충돌 후 화재'(29.3%), '충전 중 화재'(21.1%) 등 '차량 화재'를 가장 많이 꼽았다.
블룸버그는 전기차 화재 우려를 부추겼던 주요 사례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과거 2022년 2월 부산 동래구 한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서 충전을 마치고 주차해 둔 전기차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폭발해 화재가 발생했다. 2020년에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테슬라 전기자동차가 벽과 충돌하며 화재가 발생해 한 명이 숨졌다.
지난달 23일에는 울산에서 전기차 한 대가 교각을 들이받은 뒤 불이 나 운전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가 잇따르는 점이 운전자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블룸버그는 이어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문을 열어 탈출하는 방법이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서 여전이 인기라고 덧붙였다. 전업주부 엄모 씨(46)는 “화재 시 수동으로 문을 열지 못해 전기차에서 사망한 운전자도 있다고 들었다"며 “전기차에 불이 났을 때 뒷자리에 앉은 10살짜리 아들이 문을 못 열면 어떡하냐"고 우려했다.
이와 함께 한국은 전기료가 저렴하면서 공공 충전소 비율 또한 세계에서 가장 높음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충전시설 부족이 운전자들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거론되고 있다.
한국 전기료는 저렴해 전기차 충전비용 또한 7km당 0.2달러 수준이다. 또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2023 글로벌 전기차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전기차 한대당 공공 전기차 충전능력이 7키로와트(kW)로, 세계 평균(2.4kW)은 물론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3.46kW)도 크게 상회했다. 숫자가 높을수록 충전인프라가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전기차가 많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 공공 충전소 중 90%는 저속 충전기라는 점이다.
또 최근에는 화물용 전기트럭이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서 충전소를 점령하고 있어 일반 운전자들의 불만을 삼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출장을 위해 니로EV, 제네시스 GV60, EV6 등을 이용하는 권모 씨는 “특히 서울 외각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전기트럭들이 충전소를 차지하고 있다"며 “더 이상 전기차를 사용하지 않아 팔려고 내놓았다"고 토로했다.
전기트럭 차주들도 낮은 주행거리로 하루에 충전을 5~6회 해야 한다는 점에 불만을 삼고 있다. 현대차의 포터2 일렉트릭, 기아차의 봉고3 일렉트릭은 주행거리가 211km에 불과하며 고속충전기로 완충하는데 약 47분이 소요된다.
이와 관련, 대림대학교 김필수 교수는 “정부는 충전인프라를 고려하지 않은 채 전기트럭 중심으로 전기차 대중화를 추진했다"며 “현대차는 전기트럭을 생산하는데 옛날 플랫폼을 사용해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는 수단이 없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전기차 화재 우려가 과장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6월까지 누적된 전기차 화재 발생 수는 132건으로 집계됐는데 매년 내연기관차에서 약 4000건의 화재가 발생하는 것과 비교된다고 블룸버그는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