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유출 빨간불①] 글로벌 기업 ‘전쟁터’···재계 모두 사정권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3.10 11:04

반도체·AI·이차전지 등 첨단 분야 ‘인력 유치’ 경쟁 도 넘어

SK하이닉스 HBM 설계하다 마이크론 임원으로···삼성·LG도 피해 누적

국내 기업간 ‘인력 빼가기’ 불법 행위도···“보호장치 마련해야”

자료사진. SK하이닉스 이천 반도체 공장 전경.

▲자료사진. SK하이닉스 이천 반도체 공장 전경.

반도체, 인공지능(AI), 이차전지 등 첨단 경쟁력을 앞세운 산업군이 차세대 먹거리로 떠오르면서 글로벌 기업간 '기술·인력 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앞선 기술과 좋은 인재를 확보하려는 기업들이 많아지며 법을 어겨가며 기술을 탈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삼성, SK, 현대차, LG 등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재계 주요 기업들도 사정권에 들어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술 유출 피해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사법적 제재 수위를 높이고 중소기업을 위한 보호장치를 마련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관련기사 6면>




10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핵심기술'을 포함한 전체 산업 기술의 해외 유출 적발 사건은 전년보다 3건 증가한 23건으로 파악됐다. 이중 절반 이상인 15건은 반도체쪽에서 나왔다.


최근 5년간 전체 산업 기술 유출 적발 건수는 총 96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NISC)가 2003년부터 작년 7월까지 집계한 산업기술 해외 유출은 총 552건이다. 피해 규모는 100조원 이상인 것으로 추산된다.



서울중앙지법 제50민사부(재판장 김상훈)는 최근 SK하이닉스가 전직 연구원 A씨를 상대로 낸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고 위반 시 1일당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AI 시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인력 확보전 치열해지면서 A씨는 마이크론 본사에 임원급으로 가 있다. 그는 2022년 7월 SK하이닉스 퇴직 무렵 경쟁업체에 2년간 취업하거나 용역·자문·고문 계약 등을 맺지 않는다는 약정서를 작성한 상태였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핵심 기술이나 인재 유출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에는 삼성전자 전 임원이 반도체 공장 설계 도면을 빼내 그대로 본 뜬 공장을 중국에 세우려다 적발되기도 했다.


앞서 삼성전자 자회사인 세메스 전 연구원 등은 회사 영업기밀을 이용해 반도체 습식 세정장비를 만들어 수출했다가 적발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삼성전자 엔지니어가 중요 자료를 모니터 화면에 띄워놓고 이를 촬영해 보관하다 적발된 사례도 있다.




지난 2월에는 국내 반도체 공정용 진공펌프 전문기업의 기술정보를 중국으로 유출한 전직 연구원 등 일당이 재판에 넘겨졌다. 반도체 공정용 진공펌프는 진공상태를 형성·유지하는 장비로 오염물질 제거를 위해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작년 8월에는 LG에너지솔루션 전직 임원급 직원이 국가핵심기술이 포함된 영업비밀 수십건을 누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산업기술보호법 위반·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해당 직원은 자문업체를 통해 전문적으로 기술을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챙긴 돈이 9억8000만원에 달했다.


방산 업계에서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초음속 전투가 'KF-21' 기술 유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KAI에서 근무하던 인도네시아 기술자들이 해당 자료를 유출하려다가 발각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이들은 KF-21 개발 과정 등 자료가 담긴 이동식저장장치(USB)를 유출하려다 지난 1월17일 적발됐다.


지난달에는 자율주행차 관련 핵심 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죄로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을 유예받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가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대전지법 형사항소3부(손현찬 부장판사)는 KAIST 교수 산업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63)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계에서는 기술을 유출한 직원에 대한 행정 처분이 지나치게 가벼운 게 이 같은 사건이 계속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라는 말이 나온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1심 사건 총 33건 중 무죄(60.6%)와 집행유예(27.2%)가 전체의 87.8%에 달했다. 2022년 선고된 영업비밀 해외 유출 범죄의 형량은 평균 14.9개월에 불과했다.



여헌우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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