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유출 빨간불②] 반도체 등 첨단분야 경쟁 과열···韓 기업 ‘초긴장’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3.10 11:04

재계·법조계 모두 ‘기술 유출 심각성’ 인식

AI 시대 빨라지며 앞으로 다양한 형태 문제 계속될 듯

자료사진. 삼성전자 직원이 반도체 설비를 살펴보고 있다.

▲자료사진. 삼성전자 직원이 반도체 설비를 살펴보고 있다.

삼성, SK 등 기업들이 '기술 유출'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는 가운데 재계에서는 최근 드러난 각종 사례의 공통점이 '미래 기술'에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인공지능(AI),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새로운 산업군을 중심으로 인력·자본력이 집중되고 있는 만큼 기업들 입장에서는 앞으로 같은 고민을 계속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빅테크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분야는 단연 AI다. 오픈AI가 '챗 GPT'를 내놓고 엔비디아의 기업가치가 급상승하면서 수많은 기업들이 AI쪽에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강점을 지닌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는 AI의 가장 큰 수혜를 받는 제품이 고대역폭메모리(HBM)다. D램 여러 개를 수직으로 연결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끌어올린 제품이다. 개발 과정을 거친 가운데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해당 반도체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다.



마이크론 임원으로 이직한 SK하이닉스 전 연구원에 대한 전직금지 가처분을 법원이 인용한 것은 그만큼 HBM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하다는 점을 인식한 결과로 풀이된다. 해당 임원이 맺은 전직금지 약정이 5개월 정도 남은 가운데 가처분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HBM 분야에서 가장 앞서있긴 하지만 마이크론 역시 차세대 'HBM3E' 양산에 가장 먼저 성공하는 등 추격에 고삐를 죄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역시 업계 최초로 12단 36기가바이트(GB) HBM3E 개발에 성공하며 패권경쟁이 치열하다.




자율주행차 관련 핵심 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죄로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을 유예받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가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항소심이 기술 유출 사태의 중대함을 파악해 원심을 파기하고 해당 교수를 법정구속한 것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17년 중국의 해외 인재 유치 계획인 '천인계획'에 선발돼 2020년 2월까지 자율주행차 라이다(LIDAR) 기술 연구자료 등 72개 파일을 중국 현지 대학 연구원 등에게 누설한 혐의를 받는다.




정부 역시 나름대로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우리나라 산업기술보호법은 '국내외 시장에서 차지하는 기술·경제적 가치가 높거나 관련 산업의 성장 잠재력이 높아 해외로 유출될 경우에 국가의 안전 보장 및 국민 경제의 발전에 중대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규정해 특별 관리하고 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기전자, 조선, 원자력 등 분야 70여건이 여기에 해당한다. 30나노 이하급 D램 기술, 능동형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기술 등이 포함된다.


글로벌 기술 패권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만큼 주요 산업 기술 해외 유출을 강력히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산업기술보호법 개정, 법원과 협력을 통한 양형 기준 상향(실질 처벌 강화) 등에 대한 논의도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실은 지난 2월 중소기업인들과 현장 간담회에서 “기술유출 피해를 본 중소기업을 위해 정부가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기업 입장에서는 퇴사한 기술 인력이 경쟁 업체로 이직한 사실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 긴장감을 늦추기 힘든 형국이다. 이를 알아내고 전직금지 가처분 등을 내도 법원의 인용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수개월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1심 사건 총 33건 중 무죄(60.6%)와 집행유예(27.2%)가 전체의 87.8%에 달했다. 2022년 선고된 영업비밀 해외 유출 범죄의 형량은 평균 14.9개월에 불과했다.


새 국회가 해외 기술 유출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면서 보안 장치를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재계에서는 커지고 있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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