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료의약품 中 수입 비중 34%···완제품과 다른 양상
美 제재 등 불확실성 증가···“협력 모델 등 다각도로 접근해야”
반도체, 이차전지와 마찬가지로 의약품 분야에서도 원재료 중국 수입 비중이 높아 공급망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약 업계 뿐 아니라 재계 주요 기업들이 바이오·의료기기 등 분야를 '새 먹거리'로 낙점하고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상황이라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9일 산업연구원 '한·중 첨단산업의 공급망 구조 변화와 대응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원료의약품 총수입액은 29억1000만달러(약 4조원)로 집계됐다. 이 중 대중국 수입액은 10억달러(약 1조 3680억원)로 34.3%에 달했다. 의약품 완제품이 미국, 벨기에 등 선진국에서 주로 들어오고 있다는 점과 대조된다.
이 같은 대중국 공급망 의존 비율은 반도체 같은 첨단산업과 비슷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의 중국 의존도는 34%로 나타났다. 이차전지 원자재의 경우 중국 수입 비중이 64.6%에 달했다.
의약품 주요 수입 품목을 살펴보면 아황산나트륨, 황화합물, 모르포린, 기타 항생물질 등 1차 가공원료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가격이 저렴해 중국산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기업들은 현지에 진출해 활로를 개척하는 방향으로 이 같은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 있다. 한미약품, 대웅제약 등은 중국에서 만든 의약품을 모두 현지에서 판매하고 있다. SK바이오팜, JW중외제약 등은 중국에 신약 파이프라인 기술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의약품 산업은 중국 시장 진출, 제3국 진출 등 판로 개척의 미래 중요도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정부 역시 외자 유치와 인허가 제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간 무역갈등이 점점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기업들이 중국에 공급망을 의존하다가 미국의 제재 범위에 해당 원재료가 포함될 경우 피해가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해 '요소수 대란' 등을 통해 경험한 중국 정부의 수출 통제 정책도 변수로 꼽힌다.
재계는 제약·바이오 등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다. 주요 선진국에서 고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소득수준이 올라가는 중진국에서도 수요가 늘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10년대 이후 바이오 분야에 매년 조 단위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SK그룹, LG그룹, 롯데그룹 등도 바이오·헬스케어 등 사업을 신성장동력이라고 공식화한 상태다.
삼성전자의 의료기기 자회사 삼성메디슨은 전날 프랑스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업체 소니오를 약 1265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오리온그룹은 올해 초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옛 레고켐바이오)를 사들였다. 경영권 분쟁으로 무산되긴 했지만 OCI그룹은 최근 한미약품그룹과 통합을 시도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의약품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을 찾는 동시에 협력 모델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단기적으로 중국 소재에 대한 의존성을 낮출 수 없다면 현지 기업을 한국에 유치하는 식으로 공급망 안정화를 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심우중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 신산업실 전문연구원은 “미-중 갈등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활용해 우리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기도 하다"며 “대중국 공급망에 대한 전략 수립 시 의존도 탈피라는 획일적인 전략보다는 미-중 갈등 아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