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자사주 ‘전량’ 소각 요구가 무리수인 이유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6.09 13:00

거버넌스포럼 “SK, 밸류업위해 자사주 전량 소각하라”

업계 “자사주, 지배력 유지 투자재원 확보 등에 필요”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으로 자사주 가치 더 높아져

SK CI

▲SK CI

SK그룹의 지주사인 SK㈜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서는 보유 중인 자사주 전량을 소각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된 가운데 이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자사주 보유의 필요성은 무시하고 소각의 긍정적인 점만 강조한 요구라는 얘기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기업 경영 감시단체인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지난 4일 SK에 공개서한을 보내 “보유 자사주를 소각해 주주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SK㈜는 지난 1분기 기준 발행주식 총 7319만8329주 중 1867만9439주를 자기주식으로 보유하고 있다. 지분율로는 25.52% 수준이다.



이는 국내 대형 상장사 중에서도 높은 비율이다. SK가 이처럼 높은 비율의 자사주를 가지게 된 배경에는 21년 전 외국계 자산운용사 소버린으로부터 적대적 인수·합병을 당할 뻔한 사건이 있다.


당시 SK는 회사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보유 중이던 자사주를 하나은행, 신한은행 등에 매각했다. 제3자에게 매각된 자사주는 의결권이 부활하면서 SK의 우군이 됐다. 그 덕분에 최태원 SK회장은 가까스로 회사의 지배력을 방어했다.




이번 자사주의 전량 매각 요구는 이런 SK의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는 요구라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설명이다.


게다가 최근 최 회장은 이혼 소송에서 노소영 전 부인에게 1조3808억 원을 지급하라는 법원 판결을 받았다. 보유 주식을 활용해 자금을 마련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 결과 경영권 방어 메커니즘으로서 자사주의 역할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최 회장 입장에서 보유 지분이 줄거나 담보로 제공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향후 지배력을 방어할 '우군'인 자사주는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또 지주회사인 SK 입장에서는 자사주의 소각은 미래 투자 여력 감소로 이어진다. 인수합병(M&A)이나 전략적 제휴를 진행할 때 현금 대신 자사주를 대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금 대신 자사주를 교환 수단으로 사용하면 재무구조에 부담을 주지 않고 거래를 진행할 수 있다.


그렇다고 SK가 자사주 소각에 대한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최근 SK는 주주가치 증대를 위해 지난해 매입한 자기주식 69만5626주의 전량 소각을 의결했다고 공시했다. 매입가 기준 1198억원 규모로 현재 시가총액의 1% 수준이다. 지난 2022년 발표한 주주가치 증대 사업의 일환이다. 당시 SK는 2025년까지 매년 시가총액 1%에 해당하는 주식을 자사주로 매입해 소각하는 주주환원정책을 실행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장기적으로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적정 수준의 자사주 매입과 소각은 불가피하다"며 “하지만 자사주를 활용한 총수 일가의 경영권 방어와 투자 재원 확보 등도 주주가치를 위해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강현창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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