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세계 에너지경제학 석학들이 지적하는 에너지 이슈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6.30 11:00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위원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위원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위원

6월 25일부터 29일까지 이스탄불에서 열린 세계에너지경제학회(IAEE)의 제45회 국제학술대회는 에너지의 지정학적 이슈에 대한 세션으로 시작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독일, 미국, 프랑스, 아제르바이잔 에너지기업 대표들인 연설자와 토론자들은 모두 작금의 에너지 이슈들이 지정학적인 영향을 크게 받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10여 년 만에 다시금 지정학적 이슈가 에너지기업의 경영에서 주요 이슈로 주목받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학회가 열린 튀르키예는 20세기는 물론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국제적 분쟁의 중앙에 놓인 나라이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선인 보스포루스해협 위쪽으로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시발점인 크림반도가 있는 흑해가 있으며, 아래쪽으로는 에게해와 지중해가 있다. 동쪽으로는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이란 및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카스피해가 있으며 그 아래는 바로 이스라엘과 요르단이다. 주변으로 유럽과 중동/CIS 국가들을 잇는 가스파이프라인이 여럿 지나가고 있으며 보스포루스해협은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무역 통로이다. 20세기 말부터 수십 년간 이어진 카스피해의 분쟁은 우리나라 중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된 바 있다. 에너지자원과 영해를 둘러싼 분쟁이 그야말로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지역에서 지정학 이슈가 강조된 것이다.



IAEE(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Energy Economics)는 에너지경제학 분야의 세계 최대 학술단체이다. 미국에 본부가 있으며 80여 개국의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특히 국제학술대회는 대학과 연구기관의 학술적인 발표뿐만 아니라 에너지기업과 정책분석기관, 그리고 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종합적인 형태로 개최되고 있다. 한국의 참여도 활발한 편이다. IPCC의 의장을 역임한 이회성 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이 학회장을 맡은 바 있으며, 박희천, 강승진, 장영호, 허은녕 교수 등이 부회장 및 학회이사회 멤버로 활동하였다. 2013년 6월에 제34회 국제학술대회를 한국에 유치한 바 있다.


이번 학술대회에 참가한 한국 학자들을 놀라게 한 것은 전 세계 국가들 공통으로 에너지 정책의 수립 과정에 있어서 사회 문제의 중요도가 날로 커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1970~80년대의 1, 2차 석유 위기로 촉발된 에너지 정책에서의 지정학 이슈는 이후 기후변화협약으로 인하여 새로인 기술의 개발과 경제학적 제도 개선 문제로 넘어갔으며, 선진국들은 물론 우리나라 역시 에너지 정책 수립 과정에서 경제와 기술 두 가지를 중심에 놓고 논의를 가져왔다.




그러나 최근 전쟁들과 여러 국가에서 진행 중인 선거들은 공통으로 지정학과 더불어 빈곤, 복지, 접근성, 지속가능성 등 사회적인 문제들을 에너지 정책에 깊숙이 투영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여서, 첨단기술과 경제성 논의 보다는 복지와 접근성, 에너지원 간 기득권 등이 점차 심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가 선진국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제학술대회를 마무리 하는 최종 토론 세션에 참석한 미국, 프랑스, 독일, 브라질 등 국제 석학들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 기후변화협약을 꼽았다. 특히 기후변화협약이 경제나 기술의 문제만이 아닌 사회 전체가 변화하여야 하는 문제임을 지적하였다. 즉,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후변화 대응 및 적응 노력이 기술과 경제의 경계를 넘어서서 정치, 사회학적 논의를 함께 이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석학들은 이어 보다 세밀한 경제정책을 준비하고 제시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기존의 단순 시장경제 중심 정책에서 더 시야를 넓혀 사회의 변화를 포함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전쟁과 선거, 공급망 이슈 등 지정학적인 요인들을 고려하는 전략과 방안을 마련하여야 함을 강조하였다. 석학들은 또한 이러한 변화들은 에너지 정책이나 기후변화협약 대응책이 선진국의 것들을 따라 하지 말고 각 나라의 특성에 맞게 다르게 만들어져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는 한국의 경우에도 곧바로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라고 보인다.


국내 전력원믹스라는 주제에 함몰되어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사정과 사뭇 다른 국제학술대회의 모습에 한국 참가자들은 다시 한번 에너지가 국제적이고 지정학적이고 사회적인 이슈이며, 우리나라는 여전히 90% 이상의 에너지와 전략광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임을 그저 외면하고 살아왔음을 뼈저리게 반성하게 한 국제학술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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