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균 한양대학교 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
2001년 1월 일본의 경제주간지 동양경제는 소니의 이데이 노부유키(出井伸之) 회장을 '21세기형 경영자'로 선정하였다. 그런데 10년 만에 소니는 정크본드 수준으로 퇴락했다. 소니의 몰락은 최고경영자의 리더십 문제가 아니라 일본 전체에 40년 전에 만연했던 이공계 기피 현상에서 빚어진 기술개발 핵심역량의 붕괴에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입시 배치 상황이 바로 소니를 몰락시킨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수한 이공계 지망생은 의약계로 진학하며, 공학계열은 차하위 학생이 진학한다. 서울공대생의 20%가 미적분을 모르고, 진학한 학생들도 반 이상이 의전원, 로스쿨, MBA 과정으로 전공을 바꾼다. 40년 전의 일본 사회의 이공계 기피에 의한 기술개발 핵심역량의 붕괴로 소니가 삼전(삼성전자)에 추월당하듯, 현재 한국의 이공계 기피 현상은 삼전이 대만의 TSMC 등에 추월당하는 평행이론이 전개되고 있다.
삼전이 소니를 이기고 최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던 것은 1980년대 초의 대학입시 배치표에 답이 있다. 당시 한국 최고 인재들이 진학했던 학과가 바로 전자공학과였다. 그들이 바로 삼전의 기술개발 핵심 인력인 이공계 박사 6천여 명과 연구 인력 6만 여명이었다. 1999년만 해도 삼전의 4배에 달하던 소니의 시가총액은 현재 ¼에 불과하다. 1999년만 해도 소니는 세계 5위의 특허 출원 기업이었고 삼전은 16위에 불과했다. 그런데 2022년 현재 삼전은 세계 1위다. 소니는 10위 내에도 이름이 없다. 아직은 삼전의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1990년대에 입학한 우수한 이공계 출신이 임원급 기술자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영국 업체 퓨처브랜드가 '미래 가치가 높은 브랜드 순위 1위 기업'으로 선정한 이유다. 그러나 10년 이내에 이들이 은퇴할 때 잃어버린 일본의 30년이 반복될 것이다.
2023학년도 속칭 명문대학으로 통하는 SKY(서울대·연세대·고려대) 대학의 이공계 정시모집에 합격한 뒤 등록을 포기한 학생이 1,200여 명에 달한다. 이는 모집 정원 4,660명의 1/4에 해당한다. 이들 등록을 포기한 합격생 중 상당수는 의학 계열로 옮겨갔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라는 일본의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1970년 일본 후생노동성은 1985년까지 인구 10만 명당 의사 수를 150명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모든 현에 의대를 설치했다. 1961년 3,000명의 의대 입학정원이 1973년 6,200명으로 배가 되었고, 현재는 9,357명으로 3배가 되었다. 이러한 일본의 의대 정원 확대가 일본의 이공계 기피 현상을 촉진하였고 그 결과가 소니 몰락을 초래했다. 소니와 삼성전자의 평행이론은 한국의 50배에 달하는 중국의 이공계 졸업생 470만 명에서 예견된다. 양적으로도 비교가 안 되지만 질적으로 더욱 무섭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라서 의대 선호도가 지극히 낮다. 2019년 이래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특허 출원 1위 국이 되었다. 삼전의 미래사업기획단이 일본 전기 산업의 쇠퇴와 부흥의 미시적 연구에 국한하지 말고 한국, 일본, 중국의 사회 전반에 대한 마크로 연구로 큰 개혁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소니와 같은 편법이 아닌 기술력 본연에 충실한 해법을 내야 한다.
삼전 경영진이 사과했지만,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이재용 회장이 작년 한 해 동안 7번이나 대통령을 수행하여 해외 방문하는 여유를 보인 점이다. 모건스탠리가 지적한 오류에 대한 해답도 요원하다. HBM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하지 못한다. 엔비디아에 대한 납품은 미뤄지고 있다. 비메모리 부문은 만성 적자다. 파운드리에서 막대한 투자에도 TSMC와의 격차는 커지고 있다. 외국인들은 무차별 순매도한다. 8만 전자는 5만 전자가 되고 시가총액은 450조에서 350조 원으로 줄었다. 삼전이 소니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호암이 반도체 선언을 하던 1983년 2.8 도쿄 선언의 기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미래사업기획단의 첫 과제는 의학 계열 진학 수준의 우수한 이공계 인력을 삼전으로 유도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