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무대서 확인된 한국 기업들의 위기감
엔비디아의 독무대…中 업체 추격에 당혹
“중국과 하드웨어 경쟁땐 큰일” 우려 나와
최태원 “엔비디아 요구 넘어섰다” 발언 外
혁신 부족 확인… 빛바랜 K-가전의 명성들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5가 막을 내렸다. 하지만 한국 입장에서 이번 CES 2025는 아쉬움도 짙게 남는다는 평가가 많다. 전 세계에서 한국 대표 기업들의 존재감이 부각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AI 시대의 기로에 선 한국 기업들
12일 가전업계 등에 따르면 CES 2025를 대표하는 주제는 단연 AI였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AI를 구현하거나 활용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이기 바빴다. 이 분야를 이끌고 있는 엔비디아의 발표는 현장에서만 6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직관했고, 유튜브 등을 통해서도 1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지켜본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대규모 전시관을 준비해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술력을 선보였다.
삼성전자는 라스베이거스컨벤션센터(LVCC) 중앙홀에 'Samsung City'를 구현했고, LG전자는 입구에 700여 장의 LED 사이니지를 이어 붙인 초대형 키네틱 LED 조형물을 설치했다. 삼성전자의 주제는 '모두를 위한 AI: 경험과 혁신의 확장'이었다.
한종희 DX부문장 부회장은 현장에서 스마트싱스 기반의 홈 AI 전략을 발표했다. 32인치 스크린이 탑재된 비스포크 AI 패밀리허브 냉장고, 9인치 스크린의 비스포크 냉장고, 7인치 스크린이 탑재된 비스포크 AI 세탁기와 건조기 등을 선보였다.
LG전자는 '공감지능과 함께하는 일상의 라이프스타일'이란 주제로 씽큐 온 플랫폼을 소개했다. 생성형 AI를 탑재한 'LG 씽큐온'과 온디바이스 AI 기반 콘셉트 제품들이 전시됐다.
조주완 CEO도 현지 행사를 통해 “생성형 AI를 탑재한 AI 홈 허브로 고객의 일상 언어로 손쉽게 의사소통하며 가전을 연결·조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두 기업 모두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독자적인 AI 기술 개발보다는 기존 AI 기술의 활용에 그쳤다는 평가다.
이번 CES의 최대 이벤트이자 전 세계 AI 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 물 중 하나인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키노트는 한국 기업들의 위상 하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황 CEO의 키노트에서 한국 기업들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후 기자회견에서 삼성전자의 HBM 개발과 관련해 “새로운 설계가 필요하다"며 우회적 지적을 했다.
앞서 진행한 한 부회장과 조 CEO의 연설도 CES 2025의 공식적인 메인이벤트가 아니었다는 점도 아쉽다는 반응이다. 과거 두 회사 모두 CES의 공식적인 메인 이벤트를 담당한 바 있었다.
중국의 빠른 추격, 흔들리는 K-가전
전통적인 가전 시장에서도 한국 기업의 위기감이 감지됐다.
가자 위협적인 업체는 중국의 TCL과 하이센스다. 두 기업은 CES 2025에서 한국에 버금가는 기술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TCL은 115인치 QD-미니 LED TV를 선보였고, 하이센스는 116인치 미니 LED TV로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다른 경쟁사들이 아직 출시 전의 제품을 선보인 것과 달리 TCL의 경우 현재 예약 주문이 가능한 QLED TV를 선보이며 현지의 뜨거운 반응을 얻어내기도 했다.
로봇청소기 시장에서의 중국 기업의 기술력도 크게 부각됐다.
중국의 로보락은 로봇 팔을 장착한 청소기 '사로스 Z70'으로, 드리미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X50 울트라'를 출품하며 기술력을 과시했다. 로봇청소기 시장에서는 중국이 한국을 확실하게 앞질렀다는 현지의 평가가 쏟아졌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긴장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현지에서 조주완 LG전자 CEO는 “중국의 위협에 실제 대응을 위한 실행 단계가 왔다"며 위기감을 드러냈으며,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 부회장 역시 “기술이라는 것은 어제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달라 누가 더 빨리 선점하느냐가 중요하다"며 긴장감을 숨기지 못했다.
행사를 관람한 구자은 LS그룹 회장은 가장 인상 깊었던 부스로 TCL과 하이센스를 꼽으며 “우리나라가 중국과 하드웨어로 경쟁하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SK의 AI 혁신, 위기 속 새 활로 제시
그나마 한국 기업의 자존심을 세워준 곳은 SK다.
이번 CES 2025에서 SK그룹은 'Innovative AI, Sustainable Tomorrow'를 주제로 AI 생태계 구축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SK그룹은 현지 전시관을 AI DC(데이터센터), AI 서비스, AI 생태계 등 3개 부문으로 구성하고 AI 데이터센터 부문에서 SK하이닉스의 5세대 HBM(HBM3E) 16단 제품 샘플을 공개했으며, AI 서비스 부문에서는 가우스랩스, 람다, 앤트로픽과 협력한 AI 반도체 솔루션을 선보이면서 글로벌 기업들과의 파트너십을 보여줬다.
행사장을 찾은 최태원 회장은 현장에서 젠슨 황 CEO와 회동을 가진 뒤 “SK하이닉스의 개발 속도가 엔비디아의 요구를 조금 넘고 있다"는 파격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