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주시 장흥계곡. 제공=양주시
양주=에너지경제신문 강근주기자 한때 기타를 둘러메고 송추계곡 모닥불 앞에 모여 청춘을 노래하던 시절, 그 마음이 교외선과 함께 되살아나고 있다.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 느릿하게 달리는 교외선 열차와 창밖으로 펼쳐지는 푸른 산과 들판은 어느새 우리를 '그때 그 시절'로 데려간다.
2025년 '교외선'이 21년 만에 운행을 재개하면서 단순한 철로 복원이 아닌 시간 복원이 이뤄지고 있다. 열차가 닿는 곳곳의 풍경은 예전보다 더 따뜻하게 손짓한다. 특히 양주시 장흥은 추억 속 앨범에서 걸어 나와 환하게 웃는다.
양주시는 올해 '장흥 관광 활성화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다시 한번 수도권 대표 관광지로 되살릴 준비를 마쳤다. 청춘 감성과 설렘이 머무는 장흥에서 그동안 잊고 지낸 '그 시절 나'를 다시 만나보면 어떨까.
◆ “느림-낭만 만나려 교외선 탄다"

▲교외선 로맨틱 버스킹 행사. 제공=양주시
교외선이 뿜어내는 묵직한 엔진음이 철길을 따라 낮게 깔리면 승객은 말없이 창밖을 응시하게 된다. 빠르게만 흐르는 도시 일상에선 좀처럼 만날 수 없는 풍광이 흘러간다.
교외선은 고양 대곡역에서 출발해 일영-장흥-송추를 지나 의정부에 닿는 단선 비전철 노선으로 2004년 운행이 중단된 뒤 21년 만에 운행을 재개했다. 하루 왕복 20회, 한적한 시골 간이역을 천천히 지나며 특유의 여유와 낭만을 선사한다.
짧지만 진한 이 여정은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 '추억의 복원'이자 '마음의 환기'다. 교외선은 말한다. “가끔은 '조금 느린 속도'가 가장 멀리 데려다줄 수 있다고."
특히 중간 정차역인 장흥-송추는 한때 수도권 최고 피서지이자 청춘들 여행지로 사랑받았다. 지금은 예술과 자연과 전통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변신해 교외선 재개통과 함께 다시 주목받고 있다.
◆ 시간이 멈춘 간이역ⵈ '일영역'

▲교외선 양주시 일영역. 제공=양주시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전경. 제공=양주시
고요한 산자락 아래, 조용히 햇살을 머금고 있는 '일영역(日迎驛)'은 도시와 연결을 잠시 끊고 싶은 이들에게 숨 같은 공간이다. 이름처럼 하루 중 가장 따뜻한 빛을 온전히 받아내며 사람 마음까지 환하게 비춘다.
일영역은 과거 일영유원지와 함께 수도권 청춘의 대표적인 MT 장소로 이름났다. 이 간이역은 옛 정취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단정하게 리모델링돼 이제는 '포토 스팟'이자 '감성역'으로 부각됐다.
이곳은 대중문화 속에서도 자주 얼굴을 내비쳤다. BTS의 '봄날' 뮤직비디오 속 첫 장면,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두 주인공이 타임캡슐을 묻고 기차역에서 헤어지던 장면이 바로 일영역에서 탄생했다. 속도보다는 방향이, 효율보다는 기억이 중요하다는 점을 일영역은 오늘도 반추케 한다.
◆ 수도권 벚꽃엔딩ⵈ '매내미 벚꽃길'

▲양주시 매내미 벚꽃길. 제공=양주시
흔히 벚꽃을 보며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아름다움'을 말한다. 하지만 일영 일대에는 조금 늦게 피어나 조금 더 오래 머무는 '특별한 봄길'이 있다. 바로 '매내미 벚꽃길'이다. 일영역에서 멀지 않은 이 길은 아늑함과 한적함을 안겨준다.
특히 개화 시기가 늦어 수도권 '마지막 벚꽃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그저 꽃비를 맞으며 걷기만 해도 평안이 찾아든다. 포토 스팟도 SNS 인증도 절로 잊히게 할 만큼 아름답다.
매내미 라는 이름 내력도 흥미롭다. 춘향 묘가 이쪽에 있었다는 설에 따라 정체를 숨기기 위해 어머니 월매의 '매(梅)'와 남원의 '남(南)'을 합쳐 '매남'이라 불렀고 이후 매내미로 변했다고 한다.
매내미 벚꽃길 끝에는 공릉천과 맞닿은 남경수목원이 기다린다. 물길과 꽃길이 나란히 흐르며 완성한 풍광은 그 자체로 한 폭의 봄 수채화와 같다. 아쉬운 봄을 좀 더 붙잡고 싶은 이들이라면 지금 바로 매내미 벚꽃길로 떠나볼 시간이다.
◆ 자연미-인공미 콜라보ⵈ '장흥아트투어'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전경. 제공=양주시
교외선을 타고 장흥역에 내리면 '예술 산책'이 기다린다. 버스를 타고 '장흥문화예술체험특구'를 따라가면 청암민속박물관, 가나아트파크,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 등 4개 명소가 순서대로 펼쳐진다.
청암민속박물관은 2만평 부지에 1만2000여점 민속 유물이 전시돼 있어 살아있는 '시간여행'을 경험할 수 있다.
청암민속박물관에서 조금만 이동하면 가나아트파크가 기다린다. 1984년 국내 최초 사립미술관으로 시작된 이곳은 전시 공간은 비롯해 어린이체험관, 조각공원, 목마놀이터, 공연장, 레스토랑까지 갖춘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우치다 시게루, 반시게루, 장 미셸 빌모트가 설계한 건축미는 동양의 절제미와 서양의 감각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국내 최초 피카소어린이미술관은 아이들 창의력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특별한 공간으로 인기가 많다.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 전시 공간. 제공=양주시
장흥관광지 언덕 위에는 장욱진 화백의 작품세계를 담은 미술관이 있다. 단순하고 소박한 소재 속에 담아낸 깊은 사유가 전시 공간에 가득하다. “나는 심플하다"라고 말한 장욱진 화백 속내가 큰 울림을 준다
미술관 자체도 세계적 건축가 최-페레이라가 설계해 김수근 건축상, BBC 선정 8대 신설 미술관에 등재될 만큼 독창적인 건축미를 자랑한다. 올해는 기획전 '상상정원'을 통해 자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고 있다.
길 건너엔 민복진미술관이 나란히 서 있다. 사랑을 주제로 독보적 조형미를 보여준 작가 민복진 조각이 전시되며, 현재는 해방 세대 조각가 4인의 인체 조각을 조망하는 특별전 '앉거나 서거나 누워있는'이 진행 중이다. 두 미술관은 통합 발권이 가능해 한장 티켓으로 두 공간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 양주 투어 마무리ⵈ '송추계곡-북한산'

▲북한산국립공원 오봉(송추). 제공=양주시
장흥에서 문화예술 깊이를 만끽한 이들에게 송추계곡과 북한산은 녹지 힐링을 안겨준다. 송추역에서 도보 15분 거리 북한산국립공원 송추계곡 입구에 닿는다.
북한산 중심에는 웅장한 자태의 오봉이 우뚝 서 있다. 다섯 개 기암괴석이 하늘을 향해 치솟은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일순 숨을 멎게 한다.
송추역 인근은 오래전부터 '맛의 거리'로 불렸다. 로컬 맛집이 그만큼 즐비하다. 시골 밥상처럼 따뜻하고 정성스러운 맛이 일품이다. 송추계곡과 북한산은 장흥 예술 기행을 자연의 여운으로 잇는 가장 완벽한 마무리 코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