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수출대수 43만7151대로 역대 최고 ‘호황’
러·중동 전쟁특수 영향…상반기 월 2만대씩 팔려
시리아 7월부터 ‘수입 전면금지’로 30~50% 급감
업계 “특수 의존, 외국인사업자 중심 탈피 급선무”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 옆 야적장에 완성차가 대기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국내 중고차 수출 시장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러시아와 중동 지역에서 전쟁 수요가 이어지며 사상 최고 수준의 수출 실적을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시장 구조가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형적인 성장만 이뤄진 탓에 한계도 빠르게 드러났다. 최근 주요 수출국인 시리아가 '중고차 수입 금지' 조치를 내리면서 하반기 수출 급감이 우려된다.
업계에선 전쟁 특수에 의존하는 취약한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근본적인 산업 체계 개편과 시장 환경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상반기 중고차 수출대수는 43만7151대, 수출금액은 38.8억달러(한화 약 5.4조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각각 50%, 72%의 폭발적인 증가세를 기록했다.
러시아 시장의 지속적인 수요와 함께 2024년 12월 시리아 내전 종식 발표가 더해지면서 '전쟁 특수'라는 특수한 상황이 중고차 수출 실적을 끌어올렸다. 특히 올해 상반기 월평균 2만 대에 가까운 차량이 시리아로 수출되면서 시장을 주도했다.
평균 수출단가 역시 크게 상승했다. 상반기 기준으로 대당 약 8900달러(한화 약 1230만원)를 기록했다. 중국, 대만, 러시아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와 두바이 등 중동 지역의 고가 차량 수요가 늘어난 데다, 높은 달러 환율과 안정적인 해상 운임지수(SCFI)가 더해져 중고차 수출을 뒷받침했다. 이러한 외형적 성과에 업계는 큰 기대를 건 상황이었다.
하지만 6월 말, 시리아 임시정부가 돌연 7월부터 중고차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긴급 조치를 내리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긴급조치에 따라 사전 승인된 일부 물량을 제외하고는 모든 중고차 수출이 차단됐다. 이에 시리아에 차량을 집중적으로 수출해 온 인천·송도 지역의 주요 수출업체들은 한 달 사이 판매대수가 30~50% 가까이 급감하는 심각한 타격을 호소하고 있다. 내수 중고차 시장에 수출용 차량을 공급해온 일부 매매업체들 역시 앞으로 점차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사례는 단기적 지정학적 '전쟁 특수'에 지나치게 의존한 수출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특히 국내 자동차 보유대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상황에서 특정 국가를 중심으로 한 수출 집중은 언제든 큰 충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중고차 수출업계 관계자는 “시리아 등 전쟁 특수는 애초에 오래갈 수 없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하반기부터는 수출 규모가 다시 예년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우리 수출사업자들이 업계를 주도하기 보다는 외국인 사업자들이 거래의 중심이 돼 국내 업체들은 차량 공급이나 일부 부가 서비스에만 머무르는 기형적인 구조도 현실적 한계로 지적된다.
신현도 한국중고차유통연구소장은 “국내 업체들이 수출을 주도하기보다는, 외국인 사업자가 주도권을 쥐고 국내 기업들은 그들에게 차량이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수출업계는 대부분 영세사업자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 자본력이나 전문성이 부족하다"며 “이 때문에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바이어들이 실질적인 주도권을 쥐고 있고, 국내 업체들은 단순 공급자에 머무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국, 미국, 일본과 비교해 국내 자동차 보유대수가 매우 적다는 점에서, 미래 성장 역시 장기적으로는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도 있다.
게다가 시장은 빠르게 온라인화·글로벌화의 변화를 경험 중이다. 오프라인 방문 대신 모바일 앱과 메신저로 차량 상태를 확인하고 원격 결제와 통관까지 비대면 거래가 일상이 됐다.
이 같은 디지털 전환은 거래 속도와 효율을 크게 높였지만, 전통 매매상사 다수는 여전히 변화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고 경쟁에서 점차 밀려나고 있다.
이에 업계에선 “전통적인 매입·매도 수수료 모델만으로는 글로벌 경쟁 심화 속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업계 전문가들과 관계자들은 중고차 수출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생태계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단순 매매에 그치지 않고, 물류, 정비, 수출 대행 등 다양한 부가가치 서비스를 결합해 수익 구조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차량 품질 인증과 안전 점검, 현지 맞춤형 서비스 제공 등이 강화돼야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더불어 정부 차원의 정책적 뒷받침도 산업 혁신에 중요한 열쇠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행정 절차 간소화, 수출 보험 제도 확대, 그리고 지역별 수출 단지 및 거점센터 확충 등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중소 업체들이 글로벌 변화에 적응하며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판단이다.
이 같은 정책 지원 없이는 변화 속도가 느린 업체들이 점차 도태되고, 산업 전반의 지속 가능성도 위협받을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신현도 소장은 “중고차 수출시장이 아직은 활황세를 보이고 있지만, 사실상 전쟁 특수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큰 한계“라며 "외부 정세가 바뀌면 언제든 급격히 시장이 식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자동차 보유 대수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기업형 수출사업자 육성과 함께 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등록제를 통한 관리 체계 정비, 금융 및 인프라 지원 확대, 그리고 산업단지 조성 같은 중장기적 투자도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