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우의 카워드] 자동차도, 데이터센터도…세상을 지탱하는 ‘ESS’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08.21 13:59

급변하는 전동화 시대, 자동차와 배터리 산업에서 쏟아지는 낯선 전문 용어들이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카워드'는 자동차와 관련한 어려운 용어들을 쉽게 풀어 설명하고, 관련 업계 동향을 함께 소개해서 독자들이 빠르게 자동차 산업의 트렌드를 따라갈 수 있도록 돕는 코너입니다. <편집자 주>


인터배터리 LG에너지솔루션 부스에 전시된 ESS용 LFP배터리 팩. 사진=이찬우 기자

▲인터배터리 LG에너지솔루션 부스에 전시된 ESS용 LFP배터리 팩. 사진=이찬우 기자

스마트폰을 쓰는 우리는 '보조배터리'의 고마움을 잘 안다. 전력이 부족할 때 언제든 충전해주는 조력자다.




에너지저장장치(ESS·Energy Storage System)는 이를 수천, 수만배 확대한 거대한 보조배터리로서 전력을 적재적소에 유용하게 쓸 수 있게 하는 장치다.


특히 최근엔 인공지능(AI), 전기차 등 엄청난 전력이 필요한 산업이 발전하면서 ESS에 대한 중요도가 더욱 커지고 있다. 차세대 산업의 발전을 위해선 ESS는 이제 필수적인 소재가 된 것이다.



ESS란 무엇인가

ESS를 가장 쉽게 설명하면 대용량 보조배터리다.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발전이 불규칙한 특성을 ESS가 보완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도록 한다. 또 '전기가 쌀 때' 충전해 두고, '전기가 비쌀 때' 꺼내 쓰며 전기요금을 절약하는 기능도 한다.


자동차 배터리와 원리는 같지만, 규모와 활용처에서 차이가 크다. 자동차가 탑재형 배터리를 쓴다면, ESS는 컨테이너 단위로 구축되는 거대한 고정형 배터리 시스템이다.




배터리형 에너지저장장치(ESS)의 모습.

▲배터리형 에너지저장장치(ESS)의 모습.

다섯 가지 얼굴의 ESS

ESS는 단순히 '전력 저장 장치'라는 기술적 개념을 넘어, 쓰임새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전력용 ESS다. 발전소나 전력망에 설치돼 주파수와 전압을 안정화하고, 태양광·풍력처럼 출력이 들쑥날쑥한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안정적인 전력계통 운영의 숨은 버팀목인 셈이다.


둘째, 상업용 ESS다. 대형 마트, 빌딩, 공장 등에서는 전기요금이 비싼 '피크 타임'을 피하는 것이 비용 절감의 핵심이다. 낮에 전기를 충전해 두었다가 저녁 고비용 시간대에 활용하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셋째, UPS(Uninterruptible Power Supply)용 ESS다. 데이터센터, 병원, 금융기관처럼 전원 차단이 곧 '치명적 리스크'로 이어지는 시설에서 필수적이다. 정전 시 즉각적인 백업 전력을 공급해 '블랙아웃 공포'를 막아준다.


넷째, 가정용 ESS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주택에서 낮에 남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밤에 쓰는 방식이다. 정전 시에는 비상 전원 역할도 해 '가정의 전력 안전망'으로 쓰인다.


마지막으로, 통신용 ESS다. 통신 기지국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해 끊김 없는 통화와 데이터 송수신을 가능하게 한다. 재난 상황에서도 통신망이 작동할 수 있는 배경에는 바로 ESS가 있다.


스마트폰 보조배터리가 개인의 전력 안전망이라면, ESS는 사회 전체의 전력 안전망이라 할 수 있다.


전세계가 ESS에 집중하는 이유

글로벌 전력 수요는 AI, 클라우드, 전기차 보급 확산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와 함께 '에너지 저장'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실제로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리튬이온 ESS 시장은 2023년 약 185GWh에서 2035년 1232GWh로 6배 이상 커질 전망이다.


특히 ESS에 가장 적합한 배터리로 꼽히는 것이 'LFP(리튬인산철)'다. 가격 경쟁력이 높고, 화재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어 대규모 전력망에 안정적으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3년 기준 글로벌 ESS 시장에서 LFP가 80%를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인터배터리 유럽 2024'에서 삼성SDI가 기존 SBB(Samsung Battery Box)보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SBB 1.5를 선보이고 있다.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인터배터리 유럽 2024'에서 삼성SDI가 기존 SBB(Samsung Battery Box)보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SBB 1.5를 선보이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어디까지 왔나

국내 배터리 3사는 앞다퉈 북미 ESS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미시간 홀랜드 공장에서 북미 최초로 대규모 ESS용 LFP 배터리 양산을 시작했다. 롱셀 기반 파우치형 제품으로 테라젠, 델타 등 고객사에 공급을 확정지으며 시장 선점을 노린다.


LG엔솔은 애리조나 신규 공장 건설 계획을 당초보다 앞당겨 현지 생산을 강화했고,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가격 경쟁력도 확보했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현재 북미 지역 다수의 고객들과 ESS용 배터리 공급 협의를 진행 중"이라며 “앞으로도 최고의 기술력과 빠른 현지 대응을 바탕으로 고객가치 실현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SK온은 북미 ESS 시장 공략을 위해 엘앤에프와 LFP 양극재 공급 MOU를 체결했다. 향후 공급 계약을 통해 현지 생산 체제를 빠르게 갖추겠다는 전략이다. SK온은 이미 '윈터 프로', '장수명' LFP 배터리 시제품을 선보이며 기술 차별화를 강조해왔다.


이번 협력으로 미국 내 AMPC(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 요건을 충족하는 ESS 배터리 생산 기반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삼성SDI는 2010년부터 ESS용 배터리를 개발해왔으며, 최근에는 SBB(Samsung Battery Box)라는 '완제품 플랫폼'을 내놓았다. 컨테이너 안에 배터리·안전장치·공조시스템을 통합해, 고객은 전력망에 연결만 하면 쓸 수 있는 'ESS 풀 패키지'다.


특히 최신형 SBB 1.5에는 'EDI(Enhanced Direct Injection)'라는 신기술을 적용해, 배터리에서 열이 발생하거나 화재가 나더라도 약제가 모듈 내부에 직접 분사돼 인접 셀로 불이 번지지 않도록 했다. ESS 안전성이 시장의 승부처가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삼성SDI 관계자는 “2017년부터 테스볼트에 ESS용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으며, 이번 SBB 공급을 계기로 협력이 더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앞으로 유럽 등 글로벌 시장 공략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ESS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

ESS는 단순히 전력 산업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전기차 확산 속에서 ESS는 '충전 인프라의 뒷배터리' 역할을 하며 자동차 생태계와 직결된다.


전기차에서 시작된 배터리 기술은 이제 전력 요금을 낮추고, 정전 피해를 막고, 신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까지 해결하는 산업 전반의 인프라로 확산되고 있다. 'ESS'라는 낯선 용어 뒤에는 전동화 시대, 자동차와 배터리 업계가 붙잡고 있는 거대한 성장 기회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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