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 세탁기 전쟁 ②] USA 점령 ‘K-세탁기’에 中 호시탐탐 틈새공략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09.19 15:30

■ 美 LA 대형매장 현장 취재
삼성·LG전자 대형매장마다 명당 차지 ‘프리미엄 위상’
현지인들 GE가전사업부 中하이얼에 인수 사실 몰라
중국서 만든 500달러대 GE세탁기에 “미국산” 대답
中 저가공세, 美정부·월풀 수입산견제 이중과제 직면

하이얼·메이디·하이센스·TCL 등 중국 가전기업들이 전세계 세탁기 시장을 거세게 몰아부치고 있다. 아직 글로벌 가전 리더십을 구축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따라오지 못했지만 물량과 자본을 앞세운 공세의 세기와 속도는 갈수록 강해지고 빨라지고 있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과 일본 도시바 가전사업부를 흡수하는 등 인수합병(M&A)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에너지경제신문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해외취재 지원을 받아 한국 가전기업의 '캐시카우'인 세탁기의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산 가전의 약진과 한국 브랜드에 대한 위협, 한국 가전기업의 대응 등 전반적인 상황 진단과 향후 전망을 분석·조명하는 해외기획 시리즈 '중국 세탁기의 글로벌화와 한국 기업의 대응 전략'을 연재한다. 아울러 주요시장인 미국·일본에서 한·중 세탁기 진출상과 현지기업들의 방어 움직임도 소개한다. <편집자주>


미국 LA에 있는 베스트바이 세탁기 코너 전경. 드럼세탁기 보너에 삼성전자와 LG전자 제품이 전시돼 있다. 사진=여헌우 기자.

▲미국 LA에 있는 베스트바이 세탁기 코너 전경. 드럼세탁기 보너에 삼성전자와 LG전자 제품이 전시돼 있다. 사진=여헌우 기자.

[로스앤젤레스(미국)=여헌우 기자]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시내에 있는 베스트바이(Best Buy) 매장. 대규모 매장에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세탁기 전시 코너의 주인공은 단연 'K-세탁기'였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제품 종류와 라인업이 미국 브랜드 월풀·제너럴일렉트릭(GE)보다 많았다. 세탁기 코너의 가장 눈에 잘 띄는 '명당' 자리에는 할인 판매 중인 한국산 세탁기가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베스트바이 말고도 LA 시내 또다른 가전제품 매장인 로우스(Lowe's), 주택용품을 주로 판매하는 대형체인 홈디포(Home Depot)에서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겉으로 보기엔 K-세탁기가 미국을 점령하고 있는 듯 보였지만 속내는 복잡했다. 중국 브랜드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미국의 틈새시장을 노리고 있었다. 특히, 중국 가전 브랜드 하이얼이 '메이드 인 USA'의 자존심에 해당하는 제너럴 일렉트릭(GE)의 가전사업부를 인수하는 등 차이나머니의 막강한 '자본 공세'를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지난 7월 찾은 LA 베스트바이 매장에는 다양한 종류의 세탁기가 전시돼 있었다. 한국 고객들이 선호하는 드럼세탁기 외에도 통돌이, 교반식 등이 여전히 소비되는 탓이다. 프리미엄 드럼세탁기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통돌이 전시 공간이 확실히 구분돼 있다. 가격도 제품 형태나 용량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수백달러짜리부터 3000달러가 넘는 고가 세탁기가 공존했다.


종류는 달라도 미국 소비자들은 대부분 대용량 세탁기를 선호하는 듯했다. 한국이나 유럽에서는 보통 세탁물을 몇 ㎏까지 넣을 수 있는지를 나타내지만 미국에서는 세탁조의 부피를 큐빅피트(cu.ft.)로 표시한다. 이 때문에 용량을 직관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소형급으로 작아보이는 제품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대용량인 4cu.ft.를 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국 제품으로 치면 25㎏ 정도 돼보였다.


미국 LA에 있는 베스트바이 세탁기 코너에 월풀 드럼세탁기가 전시돼 있다. 매장 내 '명당' 자리에는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있는 드럼세탁기, 안쪽에

▲미국 LA에 있는 베스트바이 세탁기 코너에 월풀 드럼세탁기가 전시돼 있다. 매장 내 '명당' 자리에는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있는 드럼세탁기, 안쪽에는 저렴한 통돌이·교반식 제품이 주로 자리잡는다. 사진=여헌우 기자.

미국 LA에 있는 베스트바이 매장에서는 하이얼, 메이디 등 중국산 세탁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중국에서 제작된 'INSIGNIA'(베스트바이 PB) 제품 정도

▲미국 LA에 있는 베스트바이 매장에서는 하이얼, 메이디 등 중국산 세탁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중국에서 제작된 'INSIGNIA'(베스트바이 PB) 제품 정도를 찾아볼 수 있다. 다만 GE를 하이얼이 인수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미국 소비자들이 꽤 많았다. 사진=여헌우 기자.

LA 시내 대형 쇼핑몰 내에 입점한 베스트바이 매장이었는데 전시된 세탁기가 100대가 넘었다. 같은 종류 제품은 브랜드별로 구성됐다. 숫자만 놓고 보면 전체적으로 LG전자 제품이 가장 많았고, 삼성전자·월풀·GE 순이었다. 월풀의 메이텍(MAYTAG), GE의 GE Profile 등 산하 브랜드 제품도 몇몇 준비됐다.


매장직원에게 “어떤 브랜드 세탁기가 가장 잘 팔리냐"고 묻자 “어떤 제품을 찾고 계시냐"는 답이 돌아왔다. “기능이 많이 들어간 드럼세탁기를 보고 있다"고 건네자 삼성·LG전자 제품을 추천했다. 해당 직원은 한국산 세탁기를 두고 “잔고장이 많지 않고 애프터서비스(A/S)도 훌륭한 편"이라고 소개했다.


1000달러 이하 통돌이나 교반식 제품 중에서는 어떤 게 좋냐고 묻자 직원은 'INSIGNIA' 브랜드 코너로 안내했다. INSIGNIA는 베스트바이의 자체브랜드(PB)로 대부분 중국 또는 아시아권에서 위탁 생산된 제품이다. 현재 할인판매 중인 제품의 생산지 역시 중국이었다. 프리미엄 시장을 점령한 K-세탁기 위상을 중국업체들이 저가 공세로 노리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LA 버뱅크 지역에 있는 로우스 매장 분위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버뱅크는 LA에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동네다. 대형 쇼핑몰 내 로우스 매장에서는 줄자를 들고 세탁기 크기를 재는 고객이 여럿 보였다. 집마다 구성과 공간이 모두 다르다보니 생긴 일이다. 한 40대 미국인 남성은 LG전자 드럼세탁기 코너를 계속 서성이며 직원에게 할인폭을 계속 물었다.


로우스 관계자는 “프리미엄 제품은 한국산 세탁기 선호도가 확실히 높다"고 전했다. 중국 세탁기는 없냐고 묻자 “여기에는 없다"고 답했다. GE는 어느 나라 브랜드냐는 질문에는 “GE는 전통적인 미국 회사"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많은 미국인들이 GE 가전사업부가 중국기업 하이얼에 인수됐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미국 LA에 있는 로우스 매장 내 세탁기 코너 전경. 프리미엄 제품이 전시된 가장 안쪽 자리에는 LG전자 제품이 주로 자리잡고 있다. 사진=여헌우 기자.

▲미국 LA에 있는 로우스 매장 내 세탁기 코너 전경. 프리미엄 제품이 전시된 가장 안쪽 자리에는 LG전자 제품이 주로 자리잡고 있다. 사진=여헌우 기자.

미국 LA에 있는 로우스 매장 내 세탁기 코너 전경.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품을 파는 코너에서도 삼성·LG전자 제품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인들은 집

▲미국 LA에 있는 로우스 매장 내 세탁기 코너 전경.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품을 파는 코너에서도 삼성·LG전자 제품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인들은 집 특성이나 크기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세탁기 구매 시 성능만큼이나 전체 크기, 문이 열리는 방식 등을 꼼꼼하게 살피는 경향이 있다. 사진=여헌우 기자.

로우스에는 베스트바이와 비교해 세탁기 종류가 더 많은 듯했다. 유럽 가전 회사인 일렉트로룩스의 드럼세탁기 등이 월풀, GE 등과 함께 전시됐다.


미국에서 주택용품을 주로 판매하는 홈디포 매장에도 세탁기가 수십대 이상 구비돼 있다. 이곳에서 만난 고객들 역시 삼성전자와 LG전자 제품을 가장 선호한다고 말했다. 다만 제품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월풀이나 GE가 우수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홈디포에서는 다른 곳에선 보지 못한 'HOT POINT'라는 제품이 있다는 점이 눈길을 잡았다. 가격이 500달러대인데다 겉보기에 '중국산 느낌'을 풍기는 세탁기였다. 점원에게 “이거 중국산 세탁기냐"고 묻자 “GE 브랜드"라는 답이 돌아왔다. 홈디포 직원 역시 하이얼이 GE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음을 알려줬다.


LA 곳곳에서 확인한 'K-세탁기' 위상은 각종 공신력 있는 조사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초 미국 유력 소비자 전문지 컨슈머리포트가 선정한 '2025 최고 대용량 세탁기' 9개 부문 중 LG전자는 8개, 삼성전자는 1개 제품에서 수상했다. 드럼세탁기, 통돌이, 교반식 모두 한국산 제품 우수성이 입증된 것이다.


중국 하이센스와 메이디는 평가 대상으로 선정되는 것조차 애를 먹었다. 중국 브랜드 중 유일하게 교반식 세탁기 성능 평가 대상에 선정된 메이디는 종합 점수가 크게 낮아 체면을 구겨야했다. 베스트바이, 홈디포, 로우스 등 매장에서 중국 브랜드 세탁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점과 그 궤를 같이하는 대목이다. 로우스는 앞서 글로벌 가전기업 중 유일하게 LG전자를 '베스트 파트너'로 선정하기도 했다.


미국 LA에 있는 홈디포 매장 내 세탁기 코너에 GE 산하 브랜드 'HOT POINT' 제품이 전시돼 있다. 가격이 500달러대로 저렴한 편이다. 사진=여헌우 기자.

▲미국 LA에 있는 홈디포 매장 내 세탁기 코너에 GE 산하 브랜드 'HOT POINT' 제품이 전시돼 있다. 가격이 500달러대로 저렴한 편이다. 사진=여헌우 기자.

미국 LA에 있는 홈디포 매장 내 세탁기 코너에 다양한 브랜드 제품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여헌우 기자.

▲미국 LA에 있는 홈디포 매장 내 세탁기 코너에 다양한 브랜드 제품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여헌우 기자.

시장조사업체 Verified Market Research는 지난해 기준 미국 세탁기 시장 규모를 81억5000만달러(약 11조3000억원)로 추산했다. 앞으로는 연평균 7.9%씩 성장해 2032년 127억달러(약 17조6000억원)가지 커질 전망이다.


트랙라인 자료를 보면 지난해 미국 세탁기 시장 매출 기준 점유율 순위는 LG전자가 1위(23.4%), 삼성전자가 2위(21.6%)를 달리고 있다. 월풀(15.9%)과 GE(15.5%)를 압도하는 수치다.


이처럼 미국에서 K-세탁기의 위상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월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우선주의' 정책을 등에 업고 외국산 세탁기를 견제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는 사례를 꼽을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18년부터 대형 가정용 세탁기에 관세율 쿼터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했는데, 이 역시 월풀 청원에 따른 것이다. 이들은 최근에도 한국산 세탁기 등을 겨냥해 '제품 가치를 낮춰 표시해 관세를 회피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 기업들이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저가형 제품 판로를 확대하려 노력하는 동시에 GE를 인수해 운영하는 등 '자본 공세'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삼성·LG전자는 상대적으로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현지 대기업들이 자체브랜드(PB) 제품을 만들면서 중국에 주문자위탁생산(OEM) 물량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부각된다. 다만, 세탁기는 TV·스마트폰과 달리 마진(이윤) 대비 물류비 부담이 크다는 특징이 있다.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간 관세협상 최종합의를 지켜봐야하겠지만 우리 가전기업들로선 미국 관세 리스크뿐만 아니라 중국 가전업체의 다양한 공세에 '프리미엄 쉴드(방패)' 전략에만 의존하지 말고 좀더 다양한 현지 맞춤형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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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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