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계 ‘성과급 전쟁’ (하) 노사정 상생 합의 도출구조 필요성
사측 “근로자 기업혁신 참여”, 노측 “초과이익 공유 추세”
한국 특유 나눔 정서·고속성장 따른 보상심리 작용 ‘성장통’
경영진 ‘대화 무시’, 노조 ‘극한투쟁’ 아닌 사회적합의 중요
▲출처=챗GTP.
전문가들은 재계에서 벌어지는 '성과급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각 계층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측인 경영계는 구성원들과 신뢰를 쌓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노측인 노동조합은 협력업체와 상생 방안을 함께 제시하는 등 '품위'를 지키는 식이다. 근본적으로는 이사회 역할을 강화하고 새로운 분배 방법에 대한 정의를 함께 모색하는 등 구조적인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4일 재계와 노동계 등에 따르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 1일 공개한 '토요타 노사관계의 시사점'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기업과 노조가 혁신과 상생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경총은 우선 △기업 이익 분배 요구 등 분배적 교섭 △개정 노조법 시행으로 인한 산업현장 혼란 증가 △파업 만능주의, 과격투쟁 만연을 최근 우리나라 노사 관계의 문제점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올해 일본 토요타 노사협의회의 노조위원장과 부위원장 주요 발언을 소개하며 시사점을 제시했다.
경총은 “토요타 노조는 무조건적인 분배를 요구하기에 앞서 회사가 직면한 품질 저하와 생산 차질의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했다"며 “스스로 생산성 향상이나 원가 절감을 위해 일하는 방식의 비효율을 개선하겠다고 선언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경영진의 결단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거나 외부 환경 탓을 하지 않고 노조가 주도적으로 행동선언을 채택하고 실천에 옮기겠다고 했다. 이는 노조가 혁신의 주체가 돼 조직의 체질을 바꾸는 실천력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경총은 토요타 노사가 서로 대립하는 '춘투(春闘)'가 아닌 함께 과제를 공유하고 협력하는 '춘공(春共)'으로 나아가겠다고 함께 결의했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최근 노동계에서 영업이익 또는 순이익의 N% 지급과 같은 과도한 이익 분배를 요구하며 투쟁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며 “글로벌 완성차 업계 1위 기업조차 전례 없는 위기감 속에서 노조가 먼저 생존 전략을 고민하고 결의해 전사적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우리나라 노사관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경영 영속성 측면에서 노조의 역할을 강조했다.
반면에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최근 논평에서 “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성과 공유 자체를 금기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인공지능(AI)과 플랫폼 경제 확산 상황에서 기업 성과를 어떻게 사회적 공유할 것인가는 세계적 과제"라며 해외의 성과급 공유 추세를 내세웠다.
다만, 한국노총도 “지금 필요한 건 기업이 창출한 성과를 누구와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노사 간 대화"라고 밝혀 어느 쪽의 일방적인 성과 공유 찬반이 아닌 주체간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문제는 전례 없는 '성과급 투쟁' 국면에서 노사가 대화를 지속하라고 압박만 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앞서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던 삼성전자 사례의 경우에도 양측이 극한 대립을 이어가다 결국 정부 중재로 가까스로 갈등을 봉합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우선 이번 사안의 본질을 꿰뚫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한국 특유의 '나눔' 정서가 여전히 남아 있는데 우리 경제는 지난 80여년 사이 폐허에서 빌딩숲으로 빠르게 성장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해외 사례를 무작정 답습하면 안된다는 경계심이 조성된다. 우리나라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 제도를 재조명해 손보는 식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이사회의 기능 강화다. 최근 상법 개정 등을 통해 '거수기 이사회' 관행을 없애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현재 성과급은 상법상 어디에도 쟁의 대상이라고 명확히 표기돼 있지 않다. 만일 삼성전자에서 파업이 벌어졌다면 이는 불법파업이라고 봐야한다"며 “주주는 잔여이익 청구권자고 근로자는 임금채권자다. 법에도 임금을 최우선적으로 지급하라고 명시돼 있다. 기업의 계속성을 생각하고 재투자할지 배당할지를 결정하는 게 이사회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최 명예교수는 “기업 경영에서는 이사회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주주, 근로자, 소비자, 공급처, 협력업체 이 모든 이들의 이해 관계를 조율하고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이사회에서 해야한다"며 “주요 기업 이사회 힘이 없고 제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성과급 전쟁 같은) 문제들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사 관계를 연구해온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주요 대기업들이 이익을 두고 다투는 상황이 많이 전개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눈여겨봐야 되는 사안은 이들은 전체 노동자들의 극히 일부분이라는 점"이라며 “초과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기업 자체가 많지 않다. 노동 시장의 양극화를 더 심화시킬 수 있는 문제"라고 짚었다.
이 명예교수는 “기업 이익이 늘면 세금이 같이 들어오니 초과세수를 활용해 '사회연대 분배'를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노사도 자율적으로 상생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노조의 가치가 연대와 단결이다. 자기 몫만 불리려 하지 말고 노동 약자에 대한 기금 등을 조성하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성과급 논란은 단순히 '돈을 얼마 더 주느냐' 문제를 넘어 기업 내 세대 갈등, 경영 투명성, 공정성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맞물린 매우 중요한 거시·미시적 경영 이슈"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일단 성과급 산정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가장 핵심이다. 영업이익이나 경제적부가가치(EVA) 등 기준이 되는 지표를 명확히 제도화하고 이를 직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사전 합의된 룰이라는 신뢰가 쌓여야 불필요한 감정 소모와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과급 산정 기준을 수립하거나 변경할 때 노사 공동 위원회나 사내 평의회 같은 제도적 소통 채널을 활성화할 필요도 있다. '과정적 공정성'이 확보되면 경영 상황이 악화돼 성과급이 줄어들더라도 직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당해연도 실적뿐만 아니라 중장기 기업가치 제고 기여도, 혁신적인 프로젝트 성공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다면적 평가 체계를 도입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재계 한 관계자는 “새로운 시대 핵심 경쟁력은 우수 인재 확보에 있다. 성과급을 단순히 비용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구성원 동기부여를 위한 '전략적 투자'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