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장
▲이상훈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장 |
충격적인 결과였다. 각국 정부, 세계 언론, 시장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단지 예상을 크게 빗나갔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트럼프의 당선이 가져 올 변화와 불확실성에 세계는 적지 않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 대응과 재생에너지 전환을 주장해온 그룹은 훨씬 더 강한 충격을 받았다.
제22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리고 있는 마라케쉬 기후회의장에는 거대한 암운이 드리운 듯하다. 11월4일 파리협정이 발효되면서 낙관적인 분위기에서 개막된 기후회의는 이제 미국의 이탈이라는 예상하지 못한 난제에 대비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파리협정에서 이탈할 것이 확실시된다. 트럼프는 공약에서 기후변화에 대해 별로 다루지 않았지만 기후변화는 중국이 만든 장난질이고 파리협정은 갈갈이 찢어버릴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환경과 에너지를 담당하는 트럼프의 핵심 참모는 파리협정은 위헌적이며 오바마 행정부의 청정전력계획은 불법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에 적대적인 트럼프가 국회 비준도 거치지 않는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별 기여방안(NDC)를 승계하지 않을 것이다. 상원과 하원마저 기후변화 대응에 무관심하고 적대적인 공화당이 장악했기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의 기후 에너지 정책은 대부분 폐기될 운명이다.
미국이 파리협정에서 이탈할 경우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인 다른 국가들도 연쇄적인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파리협정은 자발적인 국가별 기여방안의 이행을 기본으로 하며 미국과 중국의 리더십이 취약한 체제를 보완해주는 무형의 장치이다. 국가별 기여방안(NDC)의 이행은 자발성에 기초하기 때문에 미국이 이탈한다면 다른 국가들의 동조 움직임도 기후협약에서 제어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후협상의 두 축 중에서 미국이 빠지면 중국이라는 한바퀴만으로 협상을 지탱하고 발전시키기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약속한 기후재정 지원도 백지화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이탈로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시절 제안해서 출범한 녹색기후기금(GCF)이 앞으로도 제자리를 잡기 어려워질 수 있다. 트럼프는 투표를 며칠 앞두고는 기후변화 대응 관련 연구, 기술개발, 투자에 대한 예산 1000억 달러를 삭감하여 경제 활성화에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하였다. 기후변화와 관련한 미국의 연구기관, 대학은 견디기 힘든 혹한기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는 IPCC 활동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재생에너지 시장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트럼프의 에너지 공약에서 재생에너지에 대한 언급을 찾기는 어렵다. 트럼프는 미국이 보유한 에너지 자원을 개발하고 활용하여 미국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면서 특히 석탄 개발을 강조하였다. 또 화석연료 개발을 위해 토지 규제를 대폭 폐지할 것도 약속하였다. 당장 트럼프 진영에서 불법이라고 지적했던 오바마 행정부의 청정전력계획은 시행도 되기 전에 폐지될 것이다. 석탄 생산과 발전량은 다시 증가하고 재생에너지 확대는 위축이 될 수 있다.
2015년 미국은 풍력용량 8.6GW, 태양광용량이 7.3GW가 신규로 설치되었다. 세계 2위의 풍력시장, 세계 3위의 태양광 시장이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주별로 RPS 목표를 설정해서 주정부가 주도하여 재생에너지 보급을 해오고 있지만 오바마 행정부가 연장한 연방 차원의 세액공제가 폐지된다면 미국의 풍력 시장, 태양광 시장도 위축될 것이다.
2020년까지 태양광 140GW를 보급하겠다는 힐러리 클린턴의 공약과 대비하면 태양광 시장의 충격은 엄청날 것이다. 미국 시장의 변화는 세계 재생에너지 산업에도 일정한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미국 시장을 통해 침체기를 벗어나 도약을 노리고 있는 국내 태양광산업은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국내 태양광 기업은 시장 다원화를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트럼프 당선에 에너지 산업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석탄을 비롯한 화석연료 개발과 관련한 기업들의 주가가 상승했다. 캐터필라를 비롯한 장비업체, 화석연료 운반과 관련한 철도회사 주가가 상승하고 베스타스, 노르덱스, 테슬라자동차 등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신산업 관련 주가는 하락세를 보였다. 트럼프 등장이 기후변화 대응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지연시키는 영향을 초래할 것은 분명하지만 트럼프가, 미국이 세계의 흐름을 거꾸로 돌리기는 어렵다.
특히 재생에너지 시장은 화석연료 시장을 넘어서, 미국을 넘어 발전 부문 중심으로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고 그 추세는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트럼프가 레이건 행정부처럼 미국의 재생에너지 기술 개발과 산업을 약화시킬 수 있지만 세계적 흐름을 바꾸기는 어렵다. 트럼프 당선 이후에도 세계는, 한국은 트럼프의 퇴행적 유혹에 흔들려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