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EE칼럼] 원전, 불패의 질문들▲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
원자력공학 전공자로서 가장 빈번하게 받는 질문은 ‘원자력발전소는 안전한가?’ 이다. 이 질문이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에 관한 순수한 질문이라면, 다소 공학적인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답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원전을 반대하기로 작정하고 같은 질문을 던진다며 이에는 답하기 어렵다. 이런 경우, 답변을 해도 "만일 이렇게 되면?" 또 "만일 이렇게 되면?"을 반복하면서 비현실적인 가정에까지 몰아가고 이에도 원전이 안전할 것을 요구한다.
예컨대 지구가 반으로 쪼개질 정도의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안전한 원전을 만들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사실 세상 어디에도 100% 안전이란 없다.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위험을 용인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100% 안전을 요구한다면 자동차도 비행기도 탈 수 없으며 가전제품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적의(敵意)에 찬 질문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는 것이 좋다. 대신 이 질문이 제로 리스크(Zero Risk)를 전제로 하는 것인지를 되물어 보는 편이 좋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출제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안전성에 대해 설명하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답변을 하는 동안 더욱 더 죄여 드는 올가미를 경험하게 된다. 이 질문은 불패의 질문인 것이다. 고집쟁이에게도 답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소통이 안되는 문제는 항상 화자(話者)의 책임이 아니다. 이 경우 불통(不通)의 원인은 화자가 아니라 청자(聽者)에게 있기 때문이다. 막연한 불안감에도 답하지 않는 것이 좋다. 무슨 이유가 있어야 답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냥 기분이 나쁜 것까지도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무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역시 불패의 질문, 즉 답변할 수 없는 것이다.
‘사전예방의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이 있다. 이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하더라도 심각한 환경 파괴의 위험이 있다면 여기에 적극 동참해 사전예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은 1970년대 초반 독일에 산성비로 인한 산림 파괴에 대한 예견(Vorsorge) 개념에서 비롯됐으며, 1998년 1월 일단의 과학자, 풀뿌리 환경운동가, 노조 대표 등이 위스콘신주의 한 건물에서 발표한 윙스프리드(Wingspread) 선언으로도 알려졌다.
일견 그럴싸해 보이는 이 원칙(?)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과학적 근거가 없는 마녀사냥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전에 예방하자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하겠지만 과학적 근거 없이 주관적 판단에 의해 위험하다고 인지되는 모든 진보를 억제시킬 완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주로 악성 환경단체가 주장하는 원칙일 뿐이다. 또한 ‘사전예방의 원칙에 따라서 모든 새 기술은 그 무해함이 증명되기 전까지는 위험한 것으로 간주돼야 한다’고 한다면 이 그물망을 통과할 새로운 기술은 없을 것이다. 예컨대 100% 무해함 역시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원전이 안전하다면 인구가 적은 바닷가에 건설하지 말고 서울 한복판에 건설하면 어떠냐는 주장도 한다. 이 주장은 과학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쁜 의도까지 포함돼 있다. 원전의 위험성이 0(零)이 아닐진대 인구밀집지역에 건설할 과학적 이유는 없다. 또한 비싼 땅에 건설할 경제적 이유도 없다. 풍부한 냉각수를 가진 바다에서 떨어져서 지어야 할 입지적 이유도 없다. 이 주장은 수도와 지방, 도시인과 농어촌을 대비시키면서 사회적 불평등과 지역감정을 촉발함으로써 논리적 대화를 못하게 하는 유도질문에 불과하다.
공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이런 세련된 웅변술을 갖추기 어렵다. 또한 전업으로 트집잡기만 하는 사람을 수비만 하는 사람이 맞서기도 어렵다. 입증의 책임을 행함이 있고 진보하려는 사람에게 전적으로 지우는 사회에선 생트집을 잡고 불패의 질문으로 무장된 자들을 당할 도리가 없다. 그 결과 지난 40년간 전력을 공급한 사람보다 아무런 생산도 없이 말재간만 가지고 대중을 선동하는 사람들의 시대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