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늄 과세, 유연탄 세금 확대 등 에너지세제 대폭 개편될 듯
▲조환익 한전 사장이 한국의 첫 수출 원전인 UAE바라카 원전을 찾아 건설현장을 돌아보고 있다. |
▲환경단체가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
[에너지경제신문 천근영 기자] 오는 5월9일 ‘장미대선’에서 누가 대권을 잡든지 한국 에너지 패러다임은 환경성 강화 쪽으로 급선회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바뀔 에너지 패러다임의 기저는 온실가스 감축, 미세먼저 저감, 안전성 강화다. 이에 따라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원자력발전과 석탄화력발전의 축소, 가스발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다.
에너지 업계 전문가들은 환경과 에너지를 고려한 전력수급기본계획 등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환경성이 경제성만큼이나 가치가 높아져 이 시나리오에 뼈와 살이 붙여질 것이라고 관측한다. 특히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를 제외한 거의 모든 후보가 탈원전을 에너지의 중심 정책으로 내놓았고, 석탄화전은 거의 모든 후보가 이구동성으로 축소를 외치고 있다.
◇ 대선 후보와 주요 정당의 에너지정책은 뭐?
▲(자료=에너지경제신문DB) |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국민의당-정의당 등은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에너지정책 토론회에서 "탈원전을 위해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중단하고 노후 원전인 월성1호기를 폐쇄하는 것이 당의 대선 공약"이라고 했다. 김수민 국민의당 의원 역시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고, 수명이 다 된 원전은 연장 운영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고 했다. 김제남 정의당 생태에너지본부장은 "2040년까지 핵 발전소 ‘제로’ 시대를 만들겠다"고 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이들 정당과 좀 다르다. 박장혁 바른정당 수석전문위원은 "신고리 5·6호기는 안전이 보장되고 국민이 공감한다면 진행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고,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도 "전력수요 관리 차원에서 신고리 5·6호기는 그대로 건설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고 이 두 당이 원전 확대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손실 최소화 차원에서 건설에 들어간 것만 짓겠다는 것이지 원전을 지속 확대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 짓고 있거나 계획에 들어가 있는 원전은 모두 11기다. 이 중 신고리 4호기 등 3기는 공정률이 90%를 넘어 손대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이뤄졌다. 문제는 공정률 27%인 신고리 5·6호기다. 신고리 5·6호기는 작년 6월 착공, 총 사업비 8조 6000억원 중 지금까지 1조 4000억원이 이미 쓰였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권을 잡을 경우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큰 홍역을 치를 우려가 크다. 투입된 비용이 많아 중단하기는 어렵겠지만 진통은 피하기 어려운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착공 전인 신한울 3·4호기부터는 건설 백지화 가능성이 크다. 이미 4700억원 규모의 설계 용역 계약을 마쳤으나 시공에 들어간 상태가 아니라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공약을 그대로 이행하면 원전 공사 중단에 따른 매몰 비용은 약 2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석탄화전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정률 10% 미만 발전소 9기에 대해 건설 중단을 선언했고, 국민의당 역시 허가를 취소하겠다고 한 발전소가 6기다. 두 당이 중단을 선언한 발전소 6기가 중단되면 부지 매입비와 각종 운영비 등으로 약 2조원을 허공에 날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동일 에너지 전문 변호사는 이에 대해 "계약 파기 등 발전소 건설 중단에 따른 소송은 불가피할 것"이라며 "이것이 또 하나의 사회문제로 비화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산업부 관계자 역시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저감 등 국민의 건강과 환경을 강화하는 방향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착공 전이거나 계획된 발전소 모두를 폐기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은 엄청난 무리수"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바뀔 에너지 패러다임 중 하나는 에너지원에 대한 세제다. 우선적으로 거론된 것이 석탄에 대한 감세 혜택, 수송용 연료인 경유 휘발유-가스에 대한 과제 경감이다. 수송용 연료는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15% 정도이지만 세수 비중은 88%나 돼 형평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된 바 있다.
박장혁 바른정당 수석전문위원은 "석탄화전의 연료인 유연탄에 대한 세금이 적어 화력발전 원가가 싼 것처럼 보이는 문제가 있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석탄화전의 주연료인 유연탄에 부과하는 세금을 높여야 공평하다"고 덧붙였다. 물론 원전 원료인 우라늄은 현재 세금이 없다.
이종수 서울대 교수는 "환경 비용과 사회적 비용 등을 모두 고려한 ‘통합 에너지 세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지금 전력 발전 구조에선 전기차 공급을 늘린다 해도 결국 이 전기차에 공급하는 전력은 석탄발전이나 원전에서 나오기 때문에 친환경에너지 소비체계 구축은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제남 정의당 생태에너지본부장은 "사회·환경적 비용을 고려해 전기요금 체제를 개편해야 한다"며 전기요금 인상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세제에 대한 주요 정당의 의견을 종합하면 경제성에 방점이 찍힌 현 에너지 관련 세제를 친환경 세제로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서민이 주로 소비하는 휘발유나 경유에 대한 세금을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김수민 국민의당 의원은 "발전용 유연탄은 세금을 더 거두고 휘발유·경유 등 서민경제에 필수적인 재화에 대해선 세금 인하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석유-가스 등 1차 에너지원의 가격이 2차 에너지원인 전기에 비해 비싸다. 구조적으로 전기 소비를 부추기는 체제다.
유류세에 대한 탄력세율 적용도 긍정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유가가 오르면 유류세를 인하하고, 안정되면 원래대로 돌아가는 ‘유류 탄력세 제도’를 도입해 서민의 경제적 고통을 반감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 바뀔 가능성이 큰 에너지 패러다임은?
원전과 석탄화전은 지고, 가스발전과 신재생에너지발전은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원전과 석탄화전의 연료에 대한 과세가 신설되거나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유류세 구조 역시 어떤 형태로든 바뀔 것으로 예측된다.
에너지 업계도 원전과 석탄화전 신설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자리는 가스와 신재생에너지가 대체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조성봉 숭실대 교수는 "탈원전과 석탄화력 축소를 외치고 있지만 집권 후 에너지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게 되면 쉽게 축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집권 초기 민심 잡기 차원에서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과감한 정책을 펼 개연성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황주호 경희대 교수는 "원전 신설 계획은 계획대로 진행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며 "이 경우 십여 년 후엔 전기요금 인상 등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크다"고 했다.
가스와 신재생에너지 업계는 원전과 석탄화전 축소 공약에 반색하고 있다. 집단에너지-가스 업계는 가스가 석탄화전과 신재생에너지 사이에서 ‘다리(브리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친환경에너지로 이행하는데 투자되는 시간과 비용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오염물질 배출이 적고, 안전성이 확보된 열병합이나 가스복합발전소를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재생에너지 업계는 가스 업계보다 기대가 더 크다. 이미 정부는 당초 2035년 11%이던 신재생에너지 보급목표 비중을 10년 앞당겨 2025년까지 추진키로 했다. 또한 설비비중 500MW 이상 발전회사에 부과하고 있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비율(RPS) 상향, 신재생에너지 특례요금도 적용될 가능성이 커 이 분야 산업이 급성장할 것으로 관측한다. 이미 주식시장에서는 이런 추세가 반영돼 관련 기업의 주가가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상황이다.
◇ 에너지 패러다임 변화, 관건은 전기요금 인상 등 비용증가
대선후보들이 내세운 친환경발전 공약이 이행되려면 전기요금 상승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원자력발전과 석탄화력발전보다 원가가 비싼 가스발전과 신재생에너지발전 확대로 전반적으로 원가가 높아지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송종순 조선대 교수는 "신재생에너지 확대는 반길 만한 일이나 전기요금 상승 등 사회적 비용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관건"이라며 "과거 정부처럼 인위적으로 전기요금을 잡는 정책은 한계가 분명한 상황이라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과제"라고 지적했다.
에너지 업계는 원전과 석탄화전 비중을 현재보다 10%씩 줄일 경우 전기요금은 최소 20% 인상 요인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 없이 원전과 석탄화전의 비중을 줄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유력 대선주자들이 대중영합주의만 믿고 원전과 석탄화전을 대폭 축소하겠다고 했지만 집권하게 되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김진우 8차 전력수급계획위원장은 "에너지 빈국인 우리나라의 에너지정책, 특히 전원정책의 핵심은 전원별 믹스"라며 "포퓰리즘에 휘둘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일정 시기가 지난 후에는 반드시 국민이 피해를 입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