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학진흥원↔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독립운동 공동 기획...의병장 성대 권세연
[안동=에너지경제신문 정재우 기자] 1910년 경술국치 이전부터 꾸준히 전개돼온 경북 독립운동의 시작은 단연 ‘의병(義兵)’에서부터 였다.
의병은 국가와 민족의 위기에 의(義)를 내세워 자발적으로 일으킨 민군(民軍)을 의미한다. 한말 구국을 위해 일어난 첫 번째 의병, 즉 전기의병은 일반적으로 을미(1895)·병신년(1896)에 을미사변과 단발령 시행으로 인해 촉발된 ‘을미의병’을 가리키지만, 보다 앞선 갑오년(1894)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한 갑오변란으로 인해 경북 안동에서 처음 ‘갑오의병’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렇게 경북인은 나라의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했고, 이는 유교의 의리(義理)정신에 입각하여 무수한 독립운동 명문가를 배출하게 된 계기가 됐다.
목숨을 훔쳐 살아가기 보다는 어쩌면 죽을 일에 죽는 것이 낫다.
◇권세연權世淵 안동창의격문安東倡義檄文 중
1895년 안동에서 일어난 안동의병의 초대 의병장을 역임한 성대(星臺) 권세연(1836~1899) 선생은 본관은 안동, ‘성대’는 그의 호(號)이다. 조선시대의 명신 충재 권벌 선생의 후손으로 봉화 닭실마을[유곡]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10세에 걸쳐 문한을 배출한 집’이라는 명성을 떨쳤다. 또한 1855년 당시 지역 사회의 문단을 주도했던 정재 류치명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따라서 그는 유서 깊은 집안에서 생장해 정재의 문도로서 유학적 삶과 도학적 의리를 실천한 당대의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한국국학진흥원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는 권세연 선생의 의병 창의 당시의 흔적들을 볼 수 있는 유물 자료들이 소장돼 있다.
「안동의소파록」 (경상북도독립기념관 소장·전시)은 안동의병 결성 당시, 논의를 위해 임시로 조직된 안동의소(의병소)에서 군대의 직임과 담당자를 나누어 기록한 파록(명단)으로, 의병대장에 권세연이 선임됐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다음 「안동창의격문」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창녕조씨 지산종택 기탁)은 안동의병 결성 후 대장 권세연 선생이 직접 지은 격문으로, 의병을 일으키게 된 경위 등을 유교적 대의에 입각해 서술하고 의병 활동에 동참하기를 촉구하기 위해 지어졌다.
현재까지 발견된 권세연 격문은 크게 2 종류로 <1895년 12월(음)>본과 <1896년 1월(음)>본이 있다. 권세연 선생이 직접 작성한 격문의 원본은 확인되지 않고 현재 초본과 사본이 몇 점 남아있음이 확인된다. 이 가운데 한국국학진흥원 소장본은 <1895년 12월>본으로 격문의 말미에 간략한 일의 경과가 기록돼 있고, 별도로 창의 조약문과 조약문을 쓰게 된 경위를 기록한 문서가 첨부돼 있어서 자료적 가치가 뛰어나다.
권세연 선생의 학문과 독립운동 전말에 관해 2007년 10월 11일 안동시청 시민회관 대강당에서 한 차례 추모학술강연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때 소개된 권세연 선생이 사용했다고 전해진 유품 ‘환도(環刀)’는 현재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 기탁이 이뤄진 상황이어서 앞으로 공개와 활용 여부가 주목된다.
한국국학진흥원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은 이러한 자료들을 활용해 ‘유교문화에서 꽃피운 경북인의 독립운동’이라는 주제의 첫 번째 공동홍보물 ‘도학적 의리를 실천한 의병장 성대 권세연’이 카드뉴스 형태로 제작되어 블로그·SNS 등 양 기관의 공식 온라인 홍보채널에 소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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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연 격문과 조약문(제공-한국국학진흥원) |
의병은 국가와 민족의 위기에 의(義)를 내세워 자발적으로 일으킨 민군(民軍)을 의미한다. 한말 구국을 위해 일어난 첫 번째 의병, 즉 전기의병은 일반적으로 을미(1895)·병신년(1896)에 을미사변과 단발령 시행으로 인해 촉발된 ‘을미의병’을 가리키지만, 보다 앞선 갑오년(1894)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한 갑오변란으로 인해 경북 안동에서 처음 ‘갑오의병’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렇게 경북인은 나라의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했고, 이는 유교의 의리(義理)정신에 입각하여 무수한 독립운동 명문가를 배출하게 된 계기가 됐다.
목숨을 훔쳐 살아가기 보다는 어쩌면 죽을 일에 죽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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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연 환도(제공-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
1895년 안동에서 일어난 안동의병의 초대 의병장을 역임한 성대(星臺) 권세연(1836~1899) 선생은 본관은 안동, ‘성대’는 그의 호(號)이다. 조선시대의 명신 충재 권벌 선생의 후손으로 봉화 닭실마을[유곡]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10세에 걸쳐 문한을 배출한 집’이라는 명성을 떨쳤다. 또한 1855년 당시 지역 사회의 문단을 주도했던 정재 류치명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따라서 그는 유서 깊은 집안에서 생장해 정재의 문도로서 유학적 삶과 도학적 의리를 실천한 당대의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한국국학진흥원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는 권세연 선생의 의병 창의 당시의 흔적들을 볼 수 있는 유물 자료들이 소장돼 있다.
「안동의소파록」 (경상북도독립기념관 소장·전시)은 안동의병 결성 당시, 논의를 위해 임시로 조직된 안동의소(의병소)에서 군대의 직임과 담당자를 나누어 기록한 파록(명단)으로, 의병대장에 권세연이 선임됐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다음 「안동창의격문」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창녕조씨 지산종택 기탁)은 안동의병 결성 후 대장 권세연 선생이 직접 지은 격문으로, 의병을 일으키게 된 경위 등을 유교적 대의에 입각해 서술하고 의병 활동에 동참하기를 촉구하기 위해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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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소파록(제공-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
권세연 선생의 학문과 독립운동 전말에 관해 2007년 10월 11일 안동시청 시민회관 대강당에서 한 차례 추모학술강연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때 소개된 권세연 선생이 사용했다고 전해진 유품 ‘환도(環刀)’는 현재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 기탁이 이뤄진 상황이어서 앞으로 공개와 활용 여부가 주목된다.
한국국학진흥원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은 이러한 자료들을 활용해 ‘유교문화에서 꽃피운 경북인의 독립운동’이라는 주제의 첫 번째 공동홍보물 ‘도학적 의리를 실천한 의병장 성대 권세연’이 카드뉴스 형태로 제작되어 블로그·SNS 등 양 기관의 공식 온라인 홍보채널에 소개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