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발전업계 태풍의 눈인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올해 국회 국정감사 종료와 함께 시작될 연말 입법국회를 뜨겁게 달굴지 주목된다.
전력산업 구조개편 추진은 직원들이 억대 연봉을 받아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발전공기업 구조조정의 뇌관을 건드리는 것이다. 이에 따라 관련 논의 자체 만으로도 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26일 국회와 업계에 따르면 이날 국감이 사실상 마무리됨에 따라 곧바로 본격화할 연말 입법국회에서 전력산업 구조개편 추진 논의가 불거질 전망이다. 관련 명분과 여건이 갖춰졌고 실제 국회의 관련 제안 및 입법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은 ‘전력산업 재구조화 방안’을 담은 법안의 연말 입법국회 발의를 목표로 입법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김정호 의원실 측은 "하반기 입법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며 "발전사 관계자들과도 활발히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김정호 의원은 지난 18일 발전부문에 대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국감에서 한국전력 발전자회사들의 비효율적 경영과 방만 경영, 중복 투자 문제 등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개선방안으로 ‘전력산업 재구조화 방안’을 제안했다.
이 방안의 핵심은 ▲전국에 산재한 5개 화력발전사를 중부 및 남부권역으로 2개사로 통폐합 ▲한수원을 원전과 폐전 전문기업으로 변신 ▲각 발전사별로 중복·혼재된 태양광, 풍력, 바이오매스, 수소연료전지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통합 일원화다.
김 의원은 당시 "지금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의 큰 흐름 속에서 국내 에너지전환정책과 맞물려 전력산업구조를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개편할 좋은 기회이며 전력 생산과 발전, 유통, 소비 등 여러 단계별로 에너지전환의 대변화에 대응할 필요가 있고 적기라고 생각한다"며 "지구적 차원의 온실가스 저감과 기후,환경위기 대응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확대의 방향속에서 원전과 석탄발전소의 감축문제도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머리를 맞대어 국회에서부터 공론화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당시 국감에서 이같은 김 의원의 제안에 대해 "필요성은 이해되지만 이해관계자들이 많아 조심스러운 문제"라고 답했다.
현재 우리나라 전력산업구조는 한전의 송배전과 유통 독점 체제로 운영돼 각종 경영비효율, 가격왜곡 등의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송배전은 한전, 발전은 6대 발전공기업이 나눠 맡고 있는 현 전력산업 구조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9년 구조개편이 이뤄진 뒤 20여년 간 바뀌지 않고 유지됐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가 전력산업 구조개편 로드맵으로 권고한 전력산업 민영화 및 매각은 그간 미흡 또는 지지부진했다.
▲경주 풍력발전사업지 전경 |
한전의 2019년 연결기준 영업적자는 1조3566억원으로 2008년 2조7981억원 적자 이후 1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국제유가 하락 등으로 흑자를 기록했으나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정부는 이미 ‘재생에너지3020 이행계획’에 따라 전체 발전량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 7%에서 오는 2030년까지 3배 가까운 20%로 높이기로 했다. 이처럼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탈원전, 탈석탄 발전을 가속화 하려면 한전 자회사가 한국수력원자력과 5대 발전공기업이 각각 원자력과 화력 중심 발전체계로 짜여진 기존 전력산업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와 함께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5대 발전 공기업의 유사한 사업구조에 더해 최근 정부의 그린뉴딜 추진 과정에서 나타난 중복투자 등 발전 공기업 경영 및 전력산업의 비효율 문제 등도 전력산업 구조개편 논의의 불을 당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뚜렷한 사업성도 없는 국내외 신재생 사업 투자가 우후죽순 늘어난다는 지적도 있다.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기 위해 중복투자가 빈번히 발생하는 등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국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전, 한수원, 남부·서부·중부·남동·동서발전 등 5개 발전사 국내외 신재생에너지 사업 출자법인 총 72개(중복 제외 60개) 중 25개(41.6%)는 일부 또는 완전 자본잠식 상태로 드러났다. 올해 들어서도 그린뉴딜 정책에 따라 발전자회사들이 수조원의 투자계획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여기에 한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에 직접 참여를 추진하자 발전업계 내부에서도 "이럴 거면 차라리 통합을 하는 게 낫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발전사 관계자는 "발전 자회사 분리 취지는 경쟁체재를 도입해 소비자에게 보다 많은 편익을 제공하기 위함이었지만 현재 상황은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 정부가 ‘안전과 환경’이라는 가치를 강화하면서 탈원전·탈석탄, 신재생에너지·LNG 확대를 내세우고 공기업인 발전사들이 이에 부응해 좋은 평가를 받기위해 따르려다 보니 비용부담이 커지면서 불필요한 경쟁만 늘어난 게 사실이다. 분리되긴 했지만 사업분야가 비슷하다 보니 통합해서 추진하는 게 효율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와 에너지전문가들의 이런 분석과 시각에 따라 관련 논의 장이 이번 입법국회에서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 전력산업 구조개편 논의는 한전의 신재생 발전 직접 투자 및 운영 관련 법안 심의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불거질 것으로 관측된다. 국회 산자위 민주당 간사인 송갑석 의원은 이미 한전의 신재생 발전 직접 투자 및 운영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발의해놓고 있다.
모회사인 한국전력의 김종갑 사장도 개별 발전공기업들의 자구책보다는 통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전력그룹사의 전체 이익 최적화를 도모해야 한다. 정부와 그룹사 모두가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며 "불필요한 경쟁을 최소화하고 협력을 극대화해 그룹사가 함께 발전해 나가도록 모기업 한전이 더 노력하고 더 양보하는, 지혜로운 처신을 하자"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입법 국회에서 전력산업 구조 개편 논의가 이뤄지더라도 관련 추진이 구체적으로 현실화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무엇보다 임기 4년차인 문재인 정부가 신재생 에너지 확대를 위한 발전 공기업의 적극적인 협력을 필요로 하는 입장에서 발전 공기업 노조 등을 중심으로 반발과 저항이 클 수 밖에 없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무리하게 밀어붙이기 쉽지 않아서다.
구조 개편이 추진될 경우 발전사들은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임원 감축 등 인력 구조 조정과 사옥 매각 등 어려운 난관에 봉착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분사한지 20년이 넘어 회사별로 인력 규모와 문화가 다르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고용 유지다. 비슷한 업무를 하던 회사를 통합하면 인력 감축은 불가피하다. 한 발전사 관계자는 "통합에 대해 아무런 지침이 내려온 게 없다"면서도 "만약 통합이 된다면 각 사의 사장 등 임원급 인사들은 물론 일반 직원들의 수도 크게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