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시대-에너지 빅뱅] 정치 이슈 떠오른 전력시장, 대선 정국서 구조 개편 ‘꿈틀’ 주목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1.01.01 00:00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새해는 어느 해보다 에너지 문제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질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오는 2022년 3월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둔 해로 연초부터 대선정국의 회오리에 빠져들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에너지 문제는 정치 이슈화한지 오래다. 대선 정국에선 에너지 정책 방향을 놓고 정치세력간 공방전이 치열하게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전환은 전력시장 전체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경제성, 환경성, 안전성, 사회수용성 등이 조화를 이루는 지속가능한 전력산업 체계 구축이 핵심이다. 어느 한가지 가치만을 추구해서는 안된다. 또한 전력산업에만 국한되지 않고 신재생 간헐성 등 수급안정성 문제, 전기요금 부담 완화 등 다각적 검토가 필요한 만큼 국민적 수용에 합의해 가는 절차와 투명성 확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지난해 말 문재인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에 이어 전기요금 체계 개편,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등 에너지업계의 굵직한 현안들이 마무리됐다. 새해는 기존 탈원전·탈석탄, 신재생에너지 확대 기조가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아울러 ‘전력시장 구조개편’도 활발하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 탈원전·탈석탄 정책 기조 속 발전원간 경쟁 가열될 듯


문재인 정부는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에 대한 국민적 요구와 세계적 흐름에 부응해 에너지전환 정책을 적극 추진중이다. 에너지전환 로드맵,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 제9차 전기본을 수립해 원전·석탄발전을 감축하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에너지 믹스를 전환하고 있다. 저·무탄소 원료, 탈(脫)탄소·지능형 공정·설비, 친환경차·친환경 선박·저전력 반도체 등 민간 주도의 혁신기술 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CCSU(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 수소·재생에너지 등 저탄소 신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3020 계획 발표 후 매년 신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를 초과달성했다. 지난해 신재생에너지 확대 목표가 2.4기가와트(GW)였지만 실제론 그 두 배 가까운 4.4GW를 보급하는 성과를 거뒀다. 올해 목표도 2.5GW로 잡았는데 이미 지난 7월 2.7GW 보급으로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재생에너지 발전비중도 8.5%까지 상승하는 등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차질없이 이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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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광 태양광 발전단지 전경.


반면 정부는 원자력발전소는 2034년까지 현 24기에서 17기로, 석탄화력발전소는 60기에서 30기로 줄이기로 했다. 현재까지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허가를 전면 중단하고, 노후 석탄발전소 10기를 조기 폐지하는 등 석탄발전을 대폭 감축시켰다. 동시에 액화천연가스(LNG)발전 용량은 2034년까지 60.6GW로 2017년 대비 50% 이상 확대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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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등에 따른 세계 석유수요 감소, 산유국간의 갈등 등에 따라 유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고, 유가와 연동된 가스 도입가격도 하락하고 있다. 유가, LNG 가격 하락과 반등에 따라 석탄-LNG 등 발전원 간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연료비 기준으로 급전순위를 결정하는 현행 전력시장 체제하에서 유가 변동이 석탄발전과 LNG 발전간 급전순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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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력시장 개방·발전공기업 통합론 제기될 수도


전기요금 개편, 에너지믹스 조정에 이어 전력시장 구조개편도 올해 에너지업계의 화두가 될 전망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신재생에너지 확대, 원자력·석탄화력발전 감축, 에너지신산업 육성 등 ‘에너지전환’ 정책에 따라 전력시장은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또한 미세먼지, 폭염, 온실가스 등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전력시장의 역할론이 커지고 있다. 전력업계는 신재생에너지,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차 등 에너지신산업 활성화를 위해 여전히 한전이 독점하고 있는 전력판매시장의 일부, 혹은 전면 민간 개방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국내외 주요 연구기관들도 국내 전력 판매시장 개방이 에너지 신산업 활성화를 위한 필수적 정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전의 독점이 민간의 시장 접근을 차단하고 에너지 신사업 생태계 조성을 방해하며 과도한 전력 소비를 발생시킨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환경비용 등 추가 부담 문제에 대해 국민을 설득해야 할 것"이라며 "에너지 전환 단계별로 요금 인상 요인에 대해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한국의 전력 판매부문은 단일 구매자가 운영하고, 도소매 가격은 시장이 아닌 정부가 설정한다"며 "전력 부문을 개방해 전체 가치사슬에서 진정한 경쟁과 독립적 규제기관을 도입하지 못한 점은 한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는 주요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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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업계는 신중한 모습이다. 한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공급자 측면에서 보면, 판매경쟁 활성화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등장 등 신산업 창출의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는 있지만, 경쟁여건이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쟁도입시 일부 대기업 중심의 독과점 체제를 강화시킬 우려가 있고, 이 경우 판매사가 대규모 산업체와 같은 우량고객에 더 많은 할인제도를 주는 등 수익성이 높은 고객은 전기요금이 줄고, 일반 소규모 고객들의 요금인상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프랑스, 캐나다 등도 소매 완전개방 이후 요금의 지속상승으로 인해 규제요금제로 전환하는 등 도입 초기에는 가격 인하 효과가 있었지만, 결국 전기요금이 상승하는 사례가 많아 정책이 회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력시장 개방과 함께 한전을 비롯한 기존 발전공기업들의 통합론도 제기된다. 에너지전환, 탄소중립 정책에 따라 상대적으로 저렴한 원자력발전과 석탄화력발전량이 줄고 비싼 신재생에너지와 LNG발전량이 늘어 한전의 전력구입비 부담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사태로 전기요금 인상도 어려워져 한전 그룹사의 경영환경 개선은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주력 사업이 축소되는 만큼 발전사들이 통합적으로 연료계약과 운영을 추진하는 편이 효율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전력의 김종갑 사장도 개별 발전공기업들의 자구책보다는 통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 사장은 최근 "재무건전성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자. 올해도 비상경영을 통해 효율을 높이면서 불필요한 낭비를 최소화하자"며 "세계 각국의 어떤 전력 유틸리티와 비교해도 가장 원가효율적인 경영을 하기 위해 그룹사와 함께 최선을 다하자"고 말했다. 또 "전력그룹사의 전체 이익 최적화를 도모해야 한다. 정부와 그룹사 모두가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며 "불필요한 경쟁을 최소화하고 협력을 극대화해 그룹사가 함께 발전해 나가도록 모기업 한전이 더 노력하고 더 양보하는, 지혜로운 처신을 하자"고 덧붙였다. 김 사장은 지난해 숙원 사업이던 전기요금 체계 개편을 완수했다. 업계에서는 김 사장이 여세를 몰아 오는 4월 임기만료 전에 전력시장 개편의 주춧돌을 마련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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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공기업들도 변화를 감지하고 대비하는 모습이다. 한 발전업계 관계자는 "5개 발전자회사를 2~3개로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발전 자회사 분리 취지는 경쟁체제를 도입해 소비자에게 보다 많은 편익을 제공하기 위함이었지만 현재 상황은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 정부가 ‘안전과 환경’이라는 가치를 강화하면서 탈원전·탈석탄, 신재생에너지·LNG 확대를 내세우고 공기업인 발전사들이 이에 부응해 좋은 평가를 받기위해 따르려다 보니 비용부담이 커지면서 불필요한 경쟁만 늘어난 게 사실이다. 분리되긴 했지만 사업분야가 비슷하다 보니 통합해서 추진하는 게 효율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발전사 통합이 추진될 경우 임원 감축 등 인력 구조 조정과 사옥 매각 등 어려운 난관에 봉착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한 발전사 관계자는 "통합에 대해 아무런 지침이 내려온 게 없다"면서도 "만약 통합이 된다면 각 사의 사장 등 임원급 인사들은 물론 일반 직원들의 수도 크게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외환위기 당시 한국전력의 국내 전기 생산·공급 독점체제에 변화를 준 것이다. 한국전력이 독점하고 있는 발전, 판매 부문을 10년 동안 경쟁 구도로 전환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1998년 외환위기를 겪은 뒤 본격화된 공기업 구조조정의 일환이었다.

이에 따라 전력생산과 도매판매를 담당하는 6개 발전회사가 한전으로부터 물적 분할돼 2001년 4월 출범했다. 한전 발전 부문은 한국수력원자력과 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남동, 중부, 서부, 남부, 동서 등 5개 발전 자회사로 나뉘었다. 동시에 6개 발전회사와 한전이 공동으로 출자해 전력시장 및 전력계통 운영을 맡는 ‘한국전력거래소’(거래소)도 설립됐다. 이로 인해 한전이 6개 자회사에서 생산한 전기를 전력거래소를 통해 ‘도매’로 산 뒤 기업, 가정 등에 ‘소매’로 파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구조개편은 여기까지가 끝이었다. 당시 정부는 한수원을 제외한 5개 발전 자회사는 민영화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1차 민영화 대상이었던 남동발전 매각은 노무현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3월 중단됐다. 판매 부문 개방을 염두에 둔 배전분할 논의는 2004년 6월 아예 사라졌다. 노무현 정부가 한전 배전분할을 멈추라는 노사정위원회 권고를 받아들이면서다.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물론 문재인 정부에서도 추가적인 구조개편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력업계에서는 구조개편이 계속 실패한 이유로 전체 시장 규모 축소를 우려한 기존 노조 반발, 전력시장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정부의 입장 등을 꼽는다.

특히 정부입장에서는 발전소가 민간에 넘어갈 경우 전기요금이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특히 2010년부터 한수원과 5개 발전 자회사는 시장형 공기업으로 지정돼 경영평가 주체가 한전에서 정부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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