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결산] 코로나19가 '뒤흔든' 글로벌 에너지시장...빅오일 저물고 저탄소시대 활짝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0.12.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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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한산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사진=AP/연합)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2020년은 글로벌 에너지 업계에 커다란 충격과 격변을 안겨준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에너지 산업 참사로 꼽힌 1986 체르노빌· 2011 후쿠시마 원전사고, 2010년 ‘딥워터 호라이즌’ 원유 유출 사태 등에 버금가는 수준이라는 평가다. 그 이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등장에 있다.


◇ 에너지 시장에 대혼란을 일으킨 코로나19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석유 수요는 연초부터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여행 제한 등으로 항공기 수요는 급감했고 휘발유 수요도 50년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휘발유와 혼합해서 사용하는 에탄올 수요마저 크게 감소했다.

이로 인해 세계 석유 수요가 앞으로 증가세를 보이는 일은 없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석유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평가다.

세계 최대 에너지기업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는 지난 9월 보고서에서 향후 석유 수요가 코로나19 발생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BP는 작년이 글로벌 석유수요의 정점기라고 평가했다.


◇ 마이너스권까지 추락한 국제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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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사진=AP/연합)


코로나19 사태의 본격화로 침체된 석유수요는 국제유가의 급락을 야기시켰다. 심지어 국제유가는 대폭락을 넘어 급기야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권까지 추락하기도 했다.

지난 4월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37.63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지난 17일 종가인 18.27달러에서 55.90달러나 떨어진 셈이다. 즉 원유 생산업체가 돈을 얹어주고 원유를 팔아야 하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는 코로나19 사태로 원유 수요가 급감하고 공급이 넘치는 상황에서 선물 거래 만기일이 겹친 것으로 분석된다.

CIBC 프라이빗 웰스 매니지먼트의 레베카 바빈 수석 에너지 트레이더는 "숨을 돌리게 하는 무서운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 산유국 ‘유가 전쟁’도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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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우)

이와 함께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간 ‘유가 전쟁’ 또한 유가하락에 기름을 부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 14개국과 러시아 등 10개 주요 산유국의 연대체인 OPEC+는 미 셰일오일의 기록적인 산유량에 대응하기 위해 작년부터 힘을 모아 감산정책을 이어왔다.

특히 코로나19가 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지기 시작하면서 산유국들이 올 3월 추가 감산을 통해 유가 안정화에 나서려는 찰나 러시아는 이를 거절했다. 그동안 유지했던 ‘공조’ 관계를 청산하고 ‘각자도생’의 길을 택하겠다는 것이다.

OPEC의 맹주격인 사우디는 즉각 반격에 나섰다. 사우디 국영석유업체 아람코는 아시아에 대한 4월물 아랍경질유 공식판매가격(OSP)을 두바이-오만유 현물시장 평균가격보다 낮게 책정했고 다음달부터 증산까지 예고했다.

러시아도 이에 맞서 증산하겠다고 엄포를 놓자 두 국가간의 유가 전쟁이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이 전문가들 사이에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결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서면서 사태를 중재했고 그 결과로 OPEC+는 5월부터 하루 970만 배럴을 감산하기로 4월에 합의했다.


◇ 무너지는 ‘빅 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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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엑손모빌, 토탈, 쉐브론, BP, 셸


 침체된 에너지 시장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단연 에너지 기업들이다.

한때 시가총액 기준 세계 1위를 기록하던 미국의 거대 석유업체 엑손모빌은 올해 3분기까지 누적 24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고 주가는 35% 가량 폭락했다. 이로 인해 엑손모빌은 지난 8월 92년 만에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에서 퇴출당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석유회사들은 10년만에 최대 규모의 자산 상각에 나섰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북미와 유럽에 위치한 석유·가스 회사들은 3분기까지 1450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자산을 상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자산의 10%에 달하는 수준이며 특히 로열더치셸, 토탈, BP의 상각 규모가 전체 대비 3분의 1을 차지했다.

통상 유가가 폭락하면 현금흐름이 줄어들어 에너지 기업들이 감가상각에 나서지만 이번 조치는 과거 2015년에 일어난 국제유가 폭락 시절보다 규모가 더 크다는 지적이다. 유가하락에 따른 단순 시황악화보단 전기차와 재생에너지의 등장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석유산업이 크게 위협을 받게 될 것이란 분석이다.

이를 반영한 듯 이번 4분기에 엑손모빌이 최대 200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상각했고 로열더치셸 또한 45억 달러어치 추가 상각에 나섰다.


◇ 코로나의 역설...대기오염 개선·온실가스 감축

온실가스

▲사진=픽사베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에너지 수요가 무너졌지만 역설적으로 이로 인해 대기환경이 개선되고 온실가스 배출량도 크게 감축됐다.

심각한 스모그로 악명 높은 인도의 경우 북부 지역에선 주민들이 160km 이상 떨어진 히말라야산맥을 보게 되었고 중국에서도 공장가동이 전면 중단되자 호흡기 질환자가 6만명 줄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또 전문가들에 따르면 올해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이 작년대비 7%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는 역사상 최대 감소 폭이라는 평가다.

특히 세계 각국의 락다운 조치가 본격화했던 지난 4월에는 일평균 글로벌 탄소배출량이 최대 17%까지 급감했다. 그러나 그 이후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하루 배출량이 작년 수준으로 돌아왔다는 결과도 나왔다.

이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의 하락세가 단순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추세로 만들어내기 위해 세계 각국이 힘을 써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 에너지 시장의 새로운 키워드 ‘저탄소’


풍력

▲사진=픽사베이


올해는 저탄소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된 해이기도 하다.

실제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로 전력 수요가 5% 급감했음에도 불구하고 태양광,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7% 증가했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은 "재생에너지가 코로나19에 면역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이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된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저탄소 에너지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재생에너지의 투자와 설치가 앞으로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은 친환경 사업 육성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파리기후협약에 다시 가입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영국을 시작으로 유럽연합, 중국, 일본, 우리나라 등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이에 IEA는 당장 내년부터 재생에너지 시장이 올해대비 10% 더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함께 수소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주요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한 투자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드 맥켄지의 벤 갈라거 수석 애널리스트는 "저탄소 수소경제가 어떤 형태로든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고 낙관하며 2040년까지 그린 수소의 생산비용이 최대 64%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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