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중동의 구조변화와 에너지안보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2.04.11 10:29

최기련 아주대학교 에너지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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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련 아주대학교 에너지학과 명예교수


에너지문제가 세계질서정립에서 점점 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양상이다. 지난 70년대의 석유파동이나 80년대 금융위기 때보다도 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그 시발점이 됐다. 침공사태 발생이 한달을 훨쩍 넘긴 지금 핵 위협을 포함한 지역분쟁을 초월하여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까지 우려되는 판이다.

‘코로나 대유행’이 끝나지 않은 가운데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문제에 대한 개선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벌써 지구대기온도 1.5도 이하 유지라는 파리협정목표 달성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확인되고 있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민생의 기반인 식량과 물 부족현상이 악화되고 있다.

이런 상태는 ‘광기(狂氣:Madness) 어린 국제 정세‘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각국이나 지역공동체 모두는 각자도생의 길로 가는 것 같다. 이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 ’From Cold War to Hot Peace( 냉전에서 격렬한 내홍속의 평화로)‘라는 문구다. 세계 공영(共榮)보다 지역별, 국가별 가치관의 차이에 따른 ‘문명 충돌’의 시대전개가 우려되는 때이다.

사실 실물경제에서 물가상승과 경기침체가 동행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서방의 러시아 제재는 직접 군사개입보다 금융과 국제교역부문을 중심으로 더욱 확대되고 있다. 러시아산 원유-가스-철강 등 수입금지, 국제결제은행에서 배제, 국제무역 최혜국대우 폐지 등이 그 구체적 사례이다. 이에 2차 대전 이후 가장 강력한 신(新)냉전체제 도래가 걱정된다.

따라서 향후 석유 등 자원가격예측은 불가능한 지경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두 달째인 지금 세계는 이미 1973년 석유파동 이래 최대 자원파동을 겪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이제 1차 세계대전 이래 최악의 식량위기를 겪고 있다. 경제약국들의 폐해가 상대적으로 클 것이다. 우리나라도 경제약국이다. 에너지의 95% 이상과 80%가 넘는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원유수입의 60% 이상을 의존하는 중동지역 지정학변화를 면밀하게 주시할 필요가 있다. 오랜 기간 80%가 넘는 우리 원유공급원이었던 중동은 미국산 원유수입증대에 따라 그 비중이 좀 낮아졌지만 ‘우크라 사태’를 계기로 또 다른 걱정을 안겨준다. 미국 ‘쉐일’오일-가스 생산투자 부진과 유럽에 대한 미국의 LNG 공급확대가 그것이다.

전문가들은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개념이 미국을 중심으로 급변하고 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이래 미국 등 서방세계들은 중동지역 범주를 사우디 아라비아 등 ‘아랍 리그(League)’ 국가들과 이란, 이스라엘, 터키를 합한 지역을 통칭하여 왔다. 이는 미국과 사우디 간의 석유시장 지배방안에 대한 상호이익 보호약정에 근거한 것이다. 미래주종에너지로 평가된 석유의 안정수급과 중동 내 적대세력 구축을 원하던 미국과, 왕권 안정을 위한 대내외안전 보장을 원하던 사우디와의 상호 이해가 합치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1차 대전 이후 고립주의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최근 크게 훼손되고 변질되었다. 우선 미국의 군사전략에서 중동지역 방위범주를 종래 중동국가들과 함께 이집트, 이란, 이라크에 더해 아프가니스탄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슬람 반군 준동과 아프리카, 시리아 등지의 피난민 확대 등에 대한 군사적-외교적 대처필요성에 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중동 전략개념이 모호해지고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여기에 사우디도 역내 강대국으로서 미국의 방기 위험가능성에 대응하여 자율성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러시아와 원유시장 안정을 위한 협력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 )’체제가 바로 그것이다. 이스라엘과 터키는 러시아,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심지어 이스라엘은 아프리카와의 연대를 매우 중시한다. 모두가 변화하는 지정학적 질서에 발 빠르게 대응하려는 자국이익 극대화 노력에서 비롯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마치 마트에서 물건을 사듯 언제든 돈만 주면 얼마든지 중동 기름을 사 올 수 있다는 오랜 관념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세계적 공급 장애의 대상이 중동석유가 될 수도 있다. 국민행복을 위한 최상의 에너지전략은 미리 대비하되 탄력적이어야 한다.
성철환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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