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미국 행정부, IRA에 이어 까다로운 반도체 지원법 공개
EU, CBAM·역외보조금 법안 등 자국보호 규제 법안 마련에 속도↑
산업계 "글로벌 공급망 붕괴 및 기밀 유출 등 부정적 요인 발생 우려"
[에너지경제신문 김아름 기자] 세계 주요국들의 자국 보호무역 강화 조치 흐름에 우리 산업계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 미국·유럽연합(EU) 등이 잇따라 내놓는 규제 법안들이 수출로 먹고 사는 국내 기업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윤석열 정부가 맞대응 차원에서 자국 우선주의 정책 마련과 함께 해당 국가에 강하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7일 산업계에 따르면 우리 기업들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반도체 지원법(CHIPS Act),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필두로 한 유럽연합(EU)의 환경규제와 역외보조금 법안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국과 EU가 집행하려는 법안들이 자국 보호 강화를 정조준하고 있다 보니 자칫 기업의 기밀 유출이나 공급망 붕괴 등 국제시장 질서를 왜곡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바이든 미국 정부는 IRA를 확정한데 이어 ‘반도체 지원법’ 세부 지원 조건을 공개했다. 반도체 지원법은 반도체 시설 투자 인센티브를 포함한 527억달러의 재정 지원과 25%의 투자세액공제를 담은 법안으로, 보조금을 받기 위해선 미국 정부에 기업 재정 여력과 현금 흐름, 고용 계획 등 내부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또 예상했던 사업 이익을 초과했을 시 미국 정부와 초과분 일부를 공유해야 한다. 이러한 가운데 보조금을 받은 기업에 대해 10년간 중국 내 반도체 설비 투자를 제한하는 이른바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의 세부 내용도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다.
관련 업계는 미국의 행보가 우리 반도체사들에게 상당한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며 염려하고 있다. 특히 ‘가드레일 조항’의 경우 국가 간의 기술 경쟁과 분야별 분업 체제 약화는 물론,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붕괴도 가져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대중(對中) 반도체 장비·기술 수출 통제 유예 조치가 끝나는 오는 10월부터는 10년간 일정 기술 수준 이상의 고성능 반도체를 중국에서 생산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EU의 환경규제와 역외보조금도 또 다른 장벽이다. CBAM은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을 EU로 수출할 시 해당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 배출량 추정치를 EU의 탄소배출권거래제(ETS)와 연동해 일종의 세금을 부과하는 조처다. 문제는 신고 방식과 탄소배출 계산 방식에서 역내·역외 차별 발생과 기업의 영업 비밀 등이 유출될 수 있다.
EU 역외 보조금 규정 또한 사전 신고 양식에 따라 민감 정보(자금 원천, 거래 가치, 기업 가치 산정 방법 등) 제공 의무가 포함돼 있어 기업의 민감한 비즈니스 정보가 새어 나갈 우려가 있다.
이에 조빛나 한국무역협회 브뤼셀지부 지부장은 "EU의 역외 보조금 이행법에 기재된 제3국 보조금의 정의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적용된다면, 여러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이 EU의 기업을 인수할 경우, 인수 건과 전혀 상관없는 사업 부문에서 받은 제3국 보조금까지 신고하고 정보제공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과 EU 등에서 자국 보호를 위한 법안 마련을 일찌감치 예고해 왔었는데도 우리 정부가 대응에 미진했다고 생각한다"며 "기업들도 방안 마련을 위해 예의주시하며 동분서주하는 만큼, 정부 또한 외교력과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