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E와의 대형 스팩합병, 5차례 기업가치 변경 끝에 실패
-공시 내용과 상이한 부분 많아, 논란 해결 ‘증권사 책임론’
-PIE , 1년여 시간 기회비용으로 날려, 25호 스팩은 청산 수순
하나증권이 야심차게 준비한 PIE의 대형 스팩 합병이 결국 실패로 돌아가며 '증권사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약 1년의 시간 동안 합병을 추진했지만 가치평가 등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데다 컨트롤 타워 없는 미봉책 중심으로 밀어붙이다보니 합병 불발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고 지적한다. 이번 실패로 상장을 추진하던 PIE는 기회비용을 떠안게 됐고, 하나증권 역시 스팩 분야의 평판리스크를 감당해야하는 상황이다.
지난 12일 하나금융25호스팩은 공시를 통해 “임시 주주총회가 의사 정족수 부족으로 안건이 폐기됐다"며 “피아이이와 합병 관련 진행사항을 모두 취소한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스팩 주총을 넘지 못한 것이 예견된 결과라는 평가가 상당하다. 우선, 이번 합병 과정에서 꾸준하게 지적됐던 이차전지 시장 성장률을 중심으로 한 고평가 논란이 해결되지 못한 점이 가장 큰 원인이다.
PIE는 머신 비전 등을 기반으로 한 이차전지, 반도체, 디스플레이 검사 솔루션과 스마트팩토리 솔루션을 가진 업체다. 재화 보다는 용역을 공급하는 업체로 소프트웨어를 글로벌적으로 판매할 비전을 갖고 있는 기업이다.
그런데 PIE의 기업가치에는 대부분 이차전지 제조업체나 제조장비 업체들의 성장 스토리가 녹아져 있다. 관련 업체의 성장률은 머신비전이나 스마트팩토리 시장의 성장률보다 높다. 물론 피아이이의 기업가치를 4888억원에서 2703억원까지 5차례 낮추며 합병 의지를 보였지만, 2703억원의 기업가치도 이차전지 제조시장의 기준으로 접근하니 설득력을 갖기 어려웠다.
PIE의 향후 사업계획과 증권신고서상의 영구현금흐름 추정 과정도 상이했다.
실제 최정일 PIE 대표는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저희는 궁극적으로 소프트웨어를 패키지화해서 파는 게 목표이기에 배터리는 그냥 거점이다“고 말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십 년 뒤 배터리 관련 검사 장비 솔루션 서비스가 PIE의 주력 서비스가 아닐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영구현금흐름(Eternal Value) 산정에서는 이차전지 제조시장의 성장률이 기초가 됐다. 영구현금흐름이란 말 그대로 현금흐름할인 대상 기간을 넘어선 몇 십 년의 미래 가치를 평가하는 구간이다.
게다가 영구현금흐름의 현재가치를 2059억원으로 제시했는데 이는 손익을 기준으로 산정한 PIE 수익가치 기준 기업가치인 2632억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DCF로 산정한 수익가치 대부분은 PIE의 배터리를 주축으로 산정했다는 의미다.
아울러 최 대표는 서울의 건물 등 유형자산 매입을 시사했는데 이는 합병 신고서에 기재되지 않아 또 다른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컨트롤 타워 부재… 결국은 증권사
하나증권과 PIE는 합병이 진행되는 1년의 시간 동안 배터리 중심 밸류에이션 문제, 공시 내용과 상이한 합병 자금의 사용 계획 등의 문제를 끝내 해결하지 못했다. 특히 공시와 계획이 상이한 점은 제한적인 정보만을 얻는 '하나증권'의 스팩 주주에게는 치명적이다.
업계에서는 합병 실패의 책임은 하나증권에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하나25호스팩의 운용 주체는 하나증권이다. 그리고 하나25호스팩은 합병계약의 계약당사자이다. 만약 합병무효의 소가 제기된다면 피고가 된다는 의미다. 설사 스팩 법인이 설사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법적인 효력은 하나25호스팩에 귀속된다. 인적 구성 측면에서도 하나스팩25호스팩의 등기이사(비상무이사)로 황성재 하나증권 IPO실 차장 등이 합류하고 있어 상법상 이사의 책임 규정을 적용받는다.
그리고 증권사는 관례적으로 스팩합병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다. 증권사는 스팩합병 과정에서 합병을 통과시키기 위한 제반 작업을 수행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하나증권은 사실상 가치 평가에서는 제한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입장이다. 하나25호스팩 관계자는 “(하나25호스팩이) 공시 주체라고 하더라도 첨부 서류만 들어가는 것이지 밸류에이션에 관여하지 않는다"면서 “이촌회계법인이 사업 계획이나 자료를 가기고 평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사의 역할을 보조적인 역할로 제한하는 건 실패의 책임을 회피하는 논리가 될 수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스팩 주식을 IPO 할 때 향후 합병될 대주주가 없기에 (소액주주들은) 그를 보고 투자하지 않는다"면서 “결국 증권사를 보고 투자한다"고 말했다. 이어 “증권사가 소싱을 해서 합병을 하는 건데 DCF에서 보조 역할을 수행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의문을 표했다.
그리고, 밸류에이션 관련 문제 해결 능력도 PIE보다 하나증권이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최정일 PIE 대표는 “엔지니어 출신이라 (벨류에이션) 부분은 잘 모른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실제 PIE는 밸류에이션 전문 기업이 아니다. 반면 증권사 임직원 대부분은 DCF와 같은 밸류에이션에 익숙하다.
또 하나증권은 공모과정에서 4억원의 수수료를 받았는데, 이 자금은 결국 스팩주주들로부터 나왔다. 스팩 주주들에게 대가를 수령한 만큼 서비스 품질에 대한 책임도 함께 수반된다.
한편 피아이이는 스팩합병 실패로 인해 상당한 기회비용을 치렀다.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합병 진행을 위한 노력의 결과물은 공개 시장에 진입할 골든 타임 실기(失期)란 청구서로 돌아왔다.
이번 합병 불발은 과거 NH투자증권 사례와 비교할 때 문제점이 두드러진다. 과거 대형 스팩 1호 합병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크리에이츠와 NH스팩 20호는 합병 시도 당시 상황이 어려워지자 자진 철회했다. 합병 공시부터 철회까지 6개월가량의 시간이 소요됐다. 이번 하나증권 25호 스팩은 NH증권 사례와 비교할 때 2배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음에도 기본이 되는 공시 논란조차 해결하지 못했다.
합병 실패에 따라 하나증권 25호 스팩은 향후 청산 절차를 밟을 것이 유력해 보인다. 이 과정에서 하나증권의 '무리한 추진'에 대한 지적이 잇달을 경우 증권사로서는 부정적인 꼬리표를 떼기가 어려워 질 수 있다.
또 다른 투자은행(IB) 관계자는 "당분간 하나증권의 스팩은 평판 리스크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