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주의 노선 전환 이재명 ‘우클릭 행보’ 가속화
주 52시간제 예외 검토 경제계 애로사항 적극 청취
친기업 정책 전환 가능성 잇따라 내비쳐
대선의식 중도층 확보 전략…진정성 의구심 지적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실용주의'를 기치로 우클릭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지난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및 가상자산 과세 유예에 동의했던 데서 나아가 최근엔 반도체특별법 '주 52시간제' 예외 인정을 시사하는 등 중도·보수 진영의 불안을 불식시킬 수 있는 외교·경제 정책를 대거 채택하는 모양세다.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집토끼인 진보층의 결집은 어느 정도 다져진 상황에서 '산토끼'인 중도·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4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오는 5일 민주연구원이 주최하는 '트럼프 2.0시대, 핵심 수출 기업의 고민을 듣는다' 토론회에서 좌장을 맡아 삼성·LG·SK와 대한상공회의소 패널들의 의견을 듣는다. 이어 IT전문가 주형철 전 한국벤처투자대표가 이끄는 'K-먹사니즘 본부'는 6일 '이재명표' 산업 정책을 발표한다.
이 대표는 이같은 연이은 정책·현안 관련 행사를 통해 이전과는 상당히 다른 노선의 외교·경제 관련 정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동안 중도, 보수로부터 '친중·반미 외교 노선, 반기업 성향'으로 지적받아 온 것들을 수정, '좌파·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을 불식시킬 수 있는 정책 전환을 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미 앞서 이 대표는 전날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그동안 친노동계 성향 정책의 대표 사례로 꼽혔던 '52시간제 예외 인정 반대' 입장을 재검토하겠다고 나서 파란을 일으켰다. 그는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법 적용제외 어떻게'를 주제로 진행된 정책 디베이트에서 “연구개발(R&D) 분야 고소득 전문가가 동의하면, 집중적으로 일을 해야 할 때 법으로 근로시간 자체를 통째로 막는 건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일리 있다"고 말했다. 그간 민주당이 취해 왔던 반대 입장과는 전혀 다른 반도체 산업 연구·개발(R&D) 분야 고액 연봉자에 한해 집중 근무제 허용 등 '주 52시간제 예외'를 허용해주자는 보수·산업계의 요구에 근로기준법 유명무실화 등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고수해 왔었다. .
최근 정치권에서 반도체 특별법이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불붙은 '반도체 전쟁'에서 한국이 낙오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 대만 등 주요 국가에선 연구개발(R&D) 인력들이 근로시간 제한 없이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근로시간 규제가 과도해 노동 유연성이 경직되면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업체 TSMC은 24시간, 주 7일 근무를 할 수 있다. 주 40시간제를 채택한 대만 정부가 노사가 합의하면 하루 근무를 8~12시간 늘릴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세계 시가총액 1위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를 보유한 미국은 △고위관리직·전문직·컴퓨터직 등에 종사하면서 주 684달러 이상을 버는 근로자 △연소득 10만7432달러(약 1억5000만원) 이상인 근로자는 근로시간 규제에서 제외하는 '화이트 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을 시행 중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018년 도입한 주 52시간제가 모든 업종, 모든 사무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권은 이재명 대표의 연이은 우클릭 행보를 조기대선을 의식한 중도층 확보 전략으로 해석한다. 이 대표가 지난달 2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실용주의에 입각한 정책적 판단을 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 대표는 “지금 사회는 경제적 측면에서 매우 어렵고 회복을 넘어 성장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으로 필요한 입법 조치를 과감하고 전향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며 “노사 양측이 토론하면 일정한 합의점에 근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여당과 보수 일각에선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기존의 반시장·반기업 반포퓰리즘 행적에서 갑자기 실용주의 노선으로 전환한 행보를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대표가 갑작스레 성장과 친기업을 내세우며 우클릭을 하고 있다"며 “불과 2주 전 민주당이 발표한 10대 입법과제에 기업 옥죄기 법안은 다 포함됐는데 느닷없이 친기업을 외치면 어느 국민이 믿겠나"라고 비판했다.